[아침뜨락]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코로나19로 갑자기 세상을 떴다는 친구의 슬픈 소식을 듣고 조용한 장례식장을 찾은 구순의 조문객이 어깨를 들썩이며 잘 들리지도 않는 쉰 소리로 명복을 빈다.

'떨어져 살았어도 늘 한 식구였는데, 죽음만은 어쩔 수가 없었나 보네. 자네가 걱정하던 못 갚고 남은 빚은 내가 갚아줄 테니 모든 걱정 다 내려놓고 이제 편히 쉬시게. 날 친구로 생각하고 함께 해준 칠십년 세월이 참으로 좋았고 고마웠네. 부디 극락왕생하시게.'

장례를 치르고 납골당에 봉안 후 집에 오니 고인의 채권자 10여 명이 찾아왔다. 믿을만한 친한 친구라서 없는 형편에 빚을 내서 빌려줬었는데 못 받으면 큰일이라며 당장 내 놓으라고 큰소리가 난다. 친구는 망인이 생전에 넘겨준 채무문서를 놓고 확인하면서 생전에 갚아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3천만 원이 넘는 빚을 자기 통장으로 다 정리했다. 요구한 대로 이자까지 다 챙겨가면서도 말만 해도 되는 돈 안 드는 빈 인사 한마디가 없더란다.

그리고서 며칠 후 사망소식을 늦게 알았다며 찾아온 고액 채권자 몇 명이 더 있었다. 차용증서를 받아놓고 살펴보니 채무내역에 없는 인사였다. 고액이라서 다음날에 계좌이체하기로 약속을 하고 돌려보냈다. 은행 거래내역을 확인해보니 이미 몇 년 전에 그들의 계좌로 다 변제된 것들이었다. 개인별로 만나서 송금된 내역을 보여주는 것으로 조용히 검은 막을 내렸다. 살피지 않으면 이런 일로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데.

한 달쯤 지나서 젊은 손님 한 분이 찾아와 조문을 한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 사업이 부도위기를 맞았을 때 고인의 건축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위기를 모면하여 지금은 형편이 많이 좋아졌는데, 그런 은인의 소식도 모르고 무심했었다며 금융기관의 채무변제 확인서와 등기필증, 그리고 조의금이라며 봉투 하나를 내 놓았다. 손님이 돌아간 후 열어본 봉투 속에는 1억 원짜리 수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누명의 사형수 피시아스와 친구 다몬의 목숨을 바꾸는 우정을 보면서 '친구는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으로 제2의 자신'이라고 정의를 내렸는데 수천 년 전의 그 말이 오늘까지 잘 들어맞는 건 같은 유전자라서 그런가?

그런 친구 하나 있으면 좋겠다며 한국 철학자 함석헌은 '탔던 배 꺼지는 시간/구명대 서로 사양하며/"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시를 읊으며 영혼의 친구 만나기를 갈망했다.

아주 점잖은 젊은이가 큼직하게 금융사기를 당한 사람을 찾아가 자신이 아들과 절친인데 잃어버린 돈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왔다며 통장과 비번을 알려 달란다. 통장을 보여주며 비번은 아들만 알고 있으니 아들에게 물어보란다.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젊은이가 전화를 한 후 아들이 기억이 안 난다고하니 잘 생각해 보란다. '우리 애와 절친이라면서요! 요새 절친은 친구 비밀번호도 모르나?'

정승 댁 개가 죽으면 개 친구들이 문전에 쇄도하지만 정승이 저승가면 같이 가자고 손 내밀까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익살이 진정한 친구를 잘 구분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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