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일 장마, 매뉴얼 무의미… 정책 달라져야"

이재은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 소장(행정학과 교수). / 김미정
이재은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 소장(행정학과 교수). / 김미정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수해매뉴얼상 3시간동안 90㎜ 이상이나 12시간동안 180㎜가 올 때 호우경보를 내리는데 이번 집중호우 때 1시간동안 60~90㎜가 왔어요. 호우경보가 의미가 없는 거죠. 매뉴얼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정부를 탓할 수도 없어요."

이재은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 소장은 이번 집중호우에 대해 수해매뉴얼이 적용되지 않는 이상 기상현상이었다고 평했다. 특히 악조건들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피해를 키웠다고 진단했다. 충북지역 피해액은 현재 1천700억원대로 집계됐다. 그는 행정안전부 재난관리정책자문위원장, 국제위기관리학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이 교수는 이번 호우가 예년과 다른 점들에 주목하면서 재난에 대한 대응도, 복구도, 지원정책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집중호우의 특징으로 장마기간이 예년의 한달여에서 올해 50여일 넘게 이어진 최장 장마 라는 점, 게릴라성으로 일정한 패턴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인구사회학적 측면에서는 농촌지역 마을의 배산임수 입지조건과 초고령사회에 따른 대피능력 저하가 피해를 키웠다고 봤다.

집중호우가 소강상태를 보인 4일 수해를 입은 도내 곳곳에서 민·관·군이 응급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천안 병천천 범람위기로 많은 물이 마을로 역류하면서 침수피해를 입은 청주시 옥산면 사정2리에서 폭우에 대비해 배수로 등 응급 복구가 한창이다. / 김용수
집중호우가 소강상태를 보인 4일 수해를 입은 도내 곳곳에서 민·관·군이 응급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천안 병천천 범람위기로 많은 물이 마을로 역류하면서 침수피해를 입은 청주시 옥산면 사정2리에서 폭우에 대비해 배수로 등 응급 복구가 한창이다. / 김용수

"농촌, 특히 리 단위는 65세 이상이 60%가 넘어요. 인지능력, 대처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피시기를 놓쳐 인명피해가 많이 나는 거죠. 또 농촌마을은 전통적 배산임수로 뒤로 산, 앞으로 소하천이 있어요. 토사는 하루 200㎜의 비를 흡수하지만 올해처럼 50일 이상 장마가 내리면 지반이 약해져 산사태로 이어집니다. 산사태가 나고 하천은 범람하고 마을주민들은 초고령이고 피해가 클 수밖에 없죠."

충북은 그동안 대형 자연재난이 없었기 때문에 100년 빈도에 맞춰서 설계됐던 저수지, 하천, 보 제방 등 구조물들이 피해를 키웠다고도 분석했다. 위기는 혼자 오지 않는다며 이처럼 달라진 기상현상에 맞는 재난정책의 획기적 개선, 재난매뉴얼의 손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9일부터 8월 7일까지 음성군 감곡면에 600㎜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리는 등 음성지역에 평균 455㎜이상이 내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로인해 음성지역 주민들에게 큰 생채기를 주고 줬다./음성군 제공

"주택 전파 시 1천300만원, 반파시 650만원, 침수 1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주는데 1천300만원 갖고는 단칸방도 못 구해요. 정책이 비현실적인 거죠."

재난피해를 줄이려면 피해가 나지 않도록 '예방'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재난은 피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재난을 줄일 수는 있어도 극복은 못해요. 배산임수로 재난에 위험하다면 마을의 주거지역을 옮겨야 합니다."

정부의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대해서는 신속했다고 긍정평가했다. 정부는 지난 7일 충북 충주시·제천시·음성군 등 전국 7개 지자체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했다. 기존의 시·군단위에서 읍·면·동 단위로 세분화할 필요도 지적했다.

"특별재난지역 지정에 따른 행정·재정·금융·세제상 혜택이 재난피해자 구호보다는 공공시설물 복구에 초점이 맞춰져있어서 재난피해자가 느끼는 실질적 혜택은 체감하기 어려워요. 재난피해자에게 도움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합니다."

지방정부의 이번 대응에 대해선 신속한 현장점검과 적극적 복구활동에 높은 점수를 줬다.

밤새 호우특보가 내려지며 도내에 많은 비가 내린 30일 홍수특보가 발령된 청주시 미호천 작천보 인근 소공원에 주차돼 있던 SUV차량과 카라반이 물에 잠겨 있다. / 김용수

"지방정부는 재난관리 4단계(예방-대비-대응-복구) 모두 어려운 여건이에요. 지자체장이 재난 터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중앙정부에 특별재난지역 선포 건의밖에는 없을 정도로. 이번엔 충북도, 시·군 공무원들이 신속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한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이 교수는 재난관리를 평소에도 재난 때처럼 해야 한다고,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별도 조직 설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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