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주민우 옥천 동이초등학교 교사

긴 장마에 따른 집중호우, 거기에 태풍까지. 전국 방방곡곡이 비 피해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지반이 약해져 산사태가 속출하고, 강의 제방이 터지거나 도로가 유실되는 광경이 뉴스를 통해 매일 방송됐습니다. 대자연의 힘 앞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첨단 기술과 건축 공법도 이렇 듯 무력한가 봅니다. 그렇다면 집은 물론 성곽, 제방 등 각종 사회 인프라를 흙과 돌로만 해결해야 했던 옛날 사람들은 이런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옛날 사람들은 흙이라는 한정적인 재료를 건축에 활용하기 위해 '다지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이 때 사용한 건축 기법이 바로 판축공법입니다. 판축공법이란 나무판자와 기둥을 사용해 사각형의 틀을 만든 다음, 그 안에 흙을 넣고 다져가며 시루떡처럼 층층이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공법입니다. 성곽이나 제방을 한 층 한 층 쌓아 올릴 때마다 사람들이 '달고'라는 막대기로 흙을 두드리며 다지는 아주 섬세한 공법입니다. 왜 옛날 사람들은 흙을 '다지는 것'에 집중했던 것일까요?

바로 흙의 공극률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공극이란 토양의 물리적 성질 중 하나로 토양 알갱이 사이의 틈을 말합니다. 알갱이 사이에 틈이 많다면 어떻게 될까요? 틈 속을 공기나 물이 통과하기가 쉬워지겠지요. 흙을 다지지 않고 만들어진 건축물은 당연히 무거운 하중을 잘 버틸 수 없었고 요즘처럼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는 공극으로 빗물이 쉽게 스며들어 맥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따라서 옛날 사람들은 공극률을 줄이기 위해 달고로 정성스럽게 흙을 다지면서 건축물을 만드는 판축공법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우리 조상들은 진흙 재질의 점토와 모래 재질의 사토를 한 층 한 층 번갈아 쌓아 올렸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점토는 사토에 비해 공극률이 적어 물이 닿아도 쉽게 풀어지지 않고 자기의 형태를 잘 유지합니다. 반대로 사토는 점토에 비해 공극률이 커 물에 약하지만 물을 잘 통과시키고 또 쉽게 건조될 수 있게 해줍니다. 한마디로 점토는 물로부터 건축물의 형태를 유지해주고, 사토는 물을 빨리 배출시켜 건축물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우리 조상들은 점토와 사토의 공극이 다르고 이에 따른 배수성의 차이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랍니다.

또한 점토층과 사토층 사이에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끼워 넣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을 '부엽공법'이라고 하는데요, 나뭇잎과 나뭇가지는 흙과 잘 엉겨붙어 건축물의 강도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또한 건축물 내부의 습기를 잘 배출시켜 튼튼하게 유지시켜 준다고 하네요.

주민우 옥천 동이초 교사
주민우 옥천 동이초 교사

기술이 오늘날만큼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각종 재난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했던 조상들의 노력이 느껴지시나요? 어쩌면 우리 조상들의 생존 전략은 과학적인 시각으로 생활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을런지요. 기술 범람의 시대를 살며 무의식적으로 생활의 편리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를 반성하고 오늘부터는 좀 더 과학적인 시각으로 생활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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