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연일 내리던 비가 오늘 하루 멈췄다. 늘 흐릿했던 풍경들이 오늘은 아주 선명하다. 아내는 쌓여있던 빨래를 하고 빨랫줄에 빼곡히 널었다.

테라스에서 옆집을 바라보니 다들 집에 쌓여있던 쓰레기들을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나 역시 집 앞 골목길을 쓸고 정리했다. 장맛비로 인해 나뭇가지나 비닐봉지가 골목에 있었다. 키가 큰 꽃들은 아예 허리가 꺾여 있거나 바닥으로 길게 누웠다.

저 멀리 보이는 남산이 아주 가깝게 다가와 보였다. 기분도 날씨에 영향을 받는 것인지…, 모처럼 맑고 상쾌하다. 그때 짜장면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순간 짜장면 생각이 났다. 아내도 점심이 마땅치 않다며 짜장면에 의견을 모았다.

짜장면하면 7살 때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충주에서 살던 우리 가족은 딱 1년 음성 원남면에서 살았다. 부모님은 그곳에서 짜장면집을 했다. 근처에는 파출소와 사진관, 유리상자 안에 알록달록 사탕을 파는 문구점이 있었다.

짜장면집은 테이블이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기억된다. 늘 면 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고 내가 좋아하는 달걀프라이를 자주 먹었다. 밥을 먹고 나면 아이들과 개울이나 학교에 가서 놀았다. 장날이면 장구경도 했는데 이날은 우리 짜장면집이 인기가 많았다.

직장을 가진 후 첫 여름휴가는 내가 살던 곳을 찾아가는 것으로 정했다. 그때부터 나는 원남면 짜장면집을 찾아갔다. 4~5년에 한 번꼴로 찾아간 것 같다.

신기한 것은 그 건물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한때는 문구점, 식당 등 업종이 바뀌었지만 그대로다. 문구점일 때 안으로 들어가 물건을 사고 가게 안을 살펴보았다. 어릴 적 짜장면집 구조가 어렴풋이 떠올라 잃어버렸던 보물을 찾은 듯 행복했다.

그 곳을 찾을 때만큼은 꼭 짜장면을 먹곤 한다. 한 입 베어 물면 노란 초승달 같은 단무지도 아작아작 씹어 먹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아내와 짜장면을 다 먹고 신문을 펼쳤다. 그러다 눈길이 멈췄다. 그것은 바로 수재민의 아픔을 달래준 짜장면에 관한 기사였다. 신문기사를 읽으며 가슴이 점점 뜨거워졌다.

남부지방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마을과 시장까지 모두 잠겼다는 소식을 접한 중국집을 운영하는 사람들끼리 마음을 모은 것이다.

서울에도 비가 많이 내리는데 이들은 급히 11인승 차량과 트럭을 구해 조리도구와 재료를 챙겼다. 그리고는 한 번도 쉬지 않고 4시간을 달려 구례읍 5일시장에 도착했다. 배식시간에 맞춰 밀가루를 반죽하며 요리를 시작했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상상이 된다. 비는 내리고 불앞에선 땀이 쏟아졌을 것이다. 그들이 점심시간에 맞춰 만든 짜장면은 1000그릇이었다. 100그릇도 아닌 1000그릇이라니, 깜짝 놀랐다. 순간 숫자를 잘 못 헤아린 줄 알고 손으로 콕콕 짚어 가며 다시 한 번 읽었다.

점심에 이어 그들은 준비한 재료를 탈탈 털어 저녁으로 다시 1000그릇을 정성스레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도 무섭게 비가 내리쳤고 그릇에는 짜장면과 빗물이 범벅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최고의 짜장면이라며 맛있게 드셨다고 하니 이보다 힘이 되고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을까 싶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초등학교 졸업식 날 먹었던 짜장면. 나무젓가락까지 쪽쪽 빨아가며 단무지까지 몽땅 먹었던 짜장면. 이제는 수재민의 아픔을 달래준 사랑의 짜장면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수해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모양으로 다 같이 마음과 힘을 보탰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