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혜정 청주YWCA 사무총장

122년전 9월 1일 서울 북촌에 살던 이소사, 김소사의 이름으로 발표된 '여권통문(女權通文)'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 선언문이다. 소사는 당시 나이든 여자를 일컫는 말로 이소사 김소사는 이씨 김씨성을 가진 평범한 여성들을 대표한다. 이름없이 묵묵히 살아가는 나의 할머니요, 할머니와 함께 살아갔던 동시대 이웃네들이다.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여권통문(女權通文)은 '세계여성의날'의 시초인 미국여성운동보다 10년이나 시기가 앞섰을 정도로 여성운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일대 사건이었다. 이런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올해부터는 매년 9월 1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한 황성신문은 '놀랍고 신기한 일' 제국신문은 '진실로 희한한 일이로다'라는 반응을 내놓았고, 독립신문은 '정부가 여성 교육에 예산을 써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고 한다.

근대기 전까지 여성은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로만 살아가야 했다. 그 제한된 삶의 굴레에도 사회 정치 제도적 불평등을 자각하고 함께의 목소리를 내준 여성들의 행동이 거저가 아니었음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씨름하고 성찰하고 연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용기를 내준 그 언저리 어디쯤 2020년의 내가 서있다.

'혹시 신체와 수족과 이목이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중략) '슬프다! 전날을 생각하면 사나이의 위력으로 여편네를 누르고, 구설을 핑계로 여자는 안에 머물면서 밖의 일을 말하지 않고 오로지 밥하고 옷 짓는 것만 하리오'

그 날 외쳤던 쟁쟁한 선배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울컥한 감정이 밀려왔다. 2020년 이 시대의 '김지영'이 떠올랐고 '김지은'이 떠올랐고, 끝내 '구하라'가 떠올랐다.

21세기가 되어 많은 것이 변화됐다고 하나, 여전히 여자-남자의 문제로 시작되는 성차별의 문제는 숨막히는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일상에 화살을 겨눈다.

김소사 이소사들이 외쳤던 여성의 교육권, 기회의 평등은 이미 이뤄졌지만 그 이후, 직장내의 유리천장지수와 성별임금격차는 여전히 여성들을 억압한다.

'김지영'은 어릴적부터 겪은 일상의 편견과 인습속에 '나'를 꾹꾹 눌러 참다가 남으로 빙의돼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는 처절함을 보여준다. 매일매일 차곡차곡 쌓이는 이 억압의 무게에 점차 자기 정신을 버리고 남으로 빙의해 탈출하려는 '김지영'은 현재를 살아가는 김소사 이소사이다. '나는 김지은입니다'라면서 목소리를 내준 그녀도 현재의 김소사 이소사이다. 위계의 문화로 점철된 권력의 현장에서 성폭력의 부당함에 당연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여성은 존재를 걸어야한다. 그녀의 존재를 지워버리려는 사회의 음모에 대해 작지만 또박또박 외치는 그녀가 있기에 우리는 절망하면서도 숭고한 앞날을 바라보게 된다.

억압은 역사적이다. 그리고 변화의 꿈틀거림도 역사적이다.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해 122년전 북촌에서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물이 상하면 반드시 변하고, 병이 극하면 반드시 고치는 것이 고금의 이치다"(중략)

여성운동은 오직 출발점이다.

이혜정 청주YWCA 사무총장
이혜정 청주YWCA 사무총장

'하도 놀랍고 신기'하게 억압의 역사를 고발하고 깨뜨리며 만들어왔다. 쟁쟁한 그 외침이 우리의 억압을 끌어올려주는 손이 됐다. '진실로 희한한' '여권통문'의 그 목소리가 참 고맙다. 미래를 향해 내밀어준 그 손과 목소리에 기대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현재김소사 이소사는 어디쯤 와있고 이제 무엇을 만나야 하는지 돌아본다.

여성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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