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류시호 시인·수필가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았다. 올해는 코로나19가 온 세상의 삶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자그마한 자극에도, 하찮은 일에도 예민하게 대응하는 게 요즘 현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고립되어가고, 외로움에 빠져들었는데 연극 현혹(眩惑)을 보게 되어 즐거웠다. 이 연극은 문화활동을 하며 알게 된 MBC 탤런트 회장을 역임한 정욱 배우가 초대했다.

이 연극은 한 개의 희곡을 세 명의 연출가가 3팀으로 나누어 여섯 명의 배우를 공연 때마다 2명씩 출연시키는 재미있는 무대였다. 연극 현혹의 연출은 극단 춘추 대표 송훈상, 예술공작소 몽상 대표 권혁우, 극단 아구아구 대표 정재호 등 3팀으로 이 세 명은 오랫동안 연극 연출을 해오던 분들이다. 각각의 색깔과 느낌으로 각자의 무대를 꾸미던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황대현 작가의 희곡 '현혹'을 다른 해석으로 한 무대에 올렸다.

현혹은 레드팀, 블루팀, 골드팀으로 나누었다. 레드팀(연출 권혁우) 정아미 배우는 드라마, 영화, 연극을 넘나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블루팀은 두 신부(神父)의 이야기로 연기를 하는데 노신부 역의 서광재는 KBS 22기 성우 출신이며 상대역인 젊은 신부를 맡은 정형렬은 신예 답지않게 능숙한 연기와 세련된 무대 매너가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골드팀 배우 정욱은 방송과 영화에서 잘 알려진 82세의 노 배우로 삶의 연륜만큼 깊이 있는 연기로 신부 역을 잘 표현해주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처럼 강인한 에너지로 뿜어내는 그의 연기는 정말 멋지다. 노신부 상대역의 수녀 역에는 임은연 배우가 맡았다. 그녀는 연극 '이구아나'로 춘천국제연극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골드팀은 신비주의와 종교적 맹신을 걷어내고, 6천명의 시온촌 성도를 지키며 추하고, 더러운 인간의 모습을 버린 채 사랑으로 자신의 대리인을 찾고 싶은 박성권 신부(정욱)와 박 신부의 상대역으로 교황청 대리인 캐서린 수녀(임은연)가 열연했다. 종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거룩하게 빛내기 위해 존재한다는 신념으로 살아가는 캐서린 수녀를 교도소 면회실에서 1시간 15분간의 토론을 통해 박 신부가 설득해서 현혹(眩惑)이라고 하는가 보다.

캐서린 수녀는 6천 명의 시온촌 성도를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타락한 신부의 거짓을 통해 가톨릭 종으로 남을 것인가. 2천여 년 세월을 지켜온 신앙 속에 우리는 지금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연극을 보며 이단 종교들도 생각나고, 비대화 되었던 '음성군 꽃동네' 오 신부도 생각났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정적이 흐르는 교도소 면회실에서 80세가 넘은 정욱 배우와 임은연 배우의 멋진 연기에 매료되어 막을 내리고도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동안 연극보다 음악회, 영화, 박물관, 미술관을 자주 갔었다. 정욱 배우의 초대로 그분이 출연한 연극을 가끔 보았다. 연극은 실수할 수 없기에 영화보다 살아있는 연극에 사람들이 매료되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답답한 시기 문화 활동을 통하여 여유로운 힐링의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 우리 연극이 더욱 발전하여 K팝, K드라마에 이어 세계로 더욱 뻗어나가길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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