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게 이른 가을을 실어 나른다.

올 한 해는 종식되지 않은 전염병과 장맛비로 잃어버린 우리들의 소중한 시간은 아직도 허둥대며 길을 찾고 있는데 계절은 이토록 성큼성큼 잘도 다가온다.

새벽잠을 깨우는 풀벌레 소리를 뒤적이며 어젯밤 잠들기 전에 들었던 '호로롱 호로롱' 울어대던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를 찾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귀뚜라미 소리와 합창처럼 들려오는 '찌륵 찌륵 찌르르' 요란한 소리들 속에서도 내가 찾는 어제 그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아마도 이름 모를 그 풀벌레는 새벽잠이 많은가 보다.

방안 가득 들어온 풀벌레 소리가 앞 도랑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베이스로 깔고 새벽을 연주하듯 소리가 낭랑하다. 자연이 불러주는 음악을 들으며 가랑이 사이에 이불을 돌돌 말고 어리광 부리듯 몇 번을 뒤척이다 긴 기지개로 평온함을 한껏 늘어트리며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마을을 중심으로 산책하는 모습이 간간히 눈에 띈다. 마당에 있는 진돗개 여진이도 산책 나가자며 끙끙 신호를 보낸다.

마을 주변을 돌기에는 너무 익숙한 길이라 재미도 없을뿐더러 묶인 개들이 여진이를 보고 사납게 짖는 것이 민망해서 요즘은 인가가 없는 곳으로 산책을 나간다.

아침 식사 전에 일찌감치 다녀오자는 생각에 여진이를 차에 태웠다. 처음 차에 태울 때는 두려워서 벌벌 떨던 놈이 몇 번 산책을 다녀오고서는 익숙하게 혼자서도 차에 잘 오른다.

오늘은 요각골을 지나 살미면으로 이어지는 임도로 산책길을 정했다.

요각골 마을 근처에 주차하고, 차에서 가볍게 내려 뛰는 여진이와 산길로 들어섰다.

새로운 산책길에 여진이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연신 킁킁대며 기분 좋은 탐색에 바쁘다.

시끄럽고 요란한 소리를 뿜어내는 인공적인 삶의 소리를 뒤로하고 들어선 곳에서는 바람소리. 새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풀 향기를 물어다 준다. 간간히 장맛비에 움푹 파인 산길에는 자갈길이 드러났고 배설한지 얼마 되지 않은 까만 산짐승 똥도 눈에 띈다.

습한 기운에 연신 달려드는 초파리와 산모기를 쫓느냐 들고 간 수건을 쉴 사이 없이 휘둘렀지만 잠깐 방심한 사이에 모기에게 몇 방 물렸다.

매서운 녀석의 테러에 모기 기피제를 뿌리지 않고 온 것을 후회하였다. 가려워 오면서 부풀어 오르는 피부를 보는 순간 어느 숲 해설가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 산속에서 벌이나 모기에게 물렸을 때는 씨앗똥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왕고들빼기의 진액을 바르면 가려움과 부기가 진정된다는 것이다. 마침 근처에 있는 왕고들빼기를 꺾어 하얀 진액을 모기 물린 자리에 발랐다. 기분 탓인지 효능 때문인지 가려움증은 생각보다 빨리 가라앉았다.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그것을 활용해 보았다는 뿌듯함도 잠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보라색 칡꽃이 아름다워 시선을 돌린 넝쿨 아래에 생활 폐기물인 냉장고와 의자가 버려져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고 가지 않는 이곳에 몰래 생활 폐기물을 버리고 간 양심불량 사람에게 화가 났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재활용이 가능한 폐가전은 무료 방문수거를 활용하고 재활용이 가능하지 않은 대형 폐기물의 경우에는 관할 주민센터나 인터넷 접수 후 배출하면 되는데 수수료 몇 푼 아끼자고 이렇게까지 하는 못된 사람들의 양심을 간간히 볼 때면 자연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

자연에게 위로받는 사람들이 자연을 아프게 하거나 신음하는 자연의 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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