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요사이 스스로 티끌과 같은 사람이라는 진인(塵人) 조은산 씨의 '시무상소(時務上訴)'가 강력하게 대한민국을 몰아치고 있다. 그 글 앞에 나라의 앞날을 염려한다는 정치인들,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 자타가 인정하는 지식인들은 모두 유규무언이 된다. 스스로 겸손하여 홍진세상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어두운 골방에서 살아간다는 30대 가장의 상소문은 거짓된 얼굴로 앞장 선 자들의 살을 후비고 뼈를 때린다. 티끌 같은 사람의 글은 진짜 사람, 진인(眞人)의 사자후가 되어 스스로 존재하며 세상을 밝힌다. 진짜 사람은 누구인가? 불교에서는 아라한과 같은 생사를 초월한 경지의 부처를 말하고 한민족의 선도(仙道)에서는 천기와 연결되어 몸이 진기체로 변화돼 생사, 선악을 초월하여 우주와 하나 된 사람을 말한다.

'시무상소'란 때맞추어 국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대신들이나 지도층이 왕에게 올리는 정책이다. 고려와 근세조선의 폭주하는 왕권을 견제하는 중요한 수단 중에 하나로 상소를 정성껏 읽는 일은 왕의 주요업무이었다. 시무상소문은 신라말기의 '최치원'(857~?)으로 올라간다. 그는 당나라 과거에 급제하여 승무랑 전중시어사의 벼슬을 지내다가 귀국 후, 진성여왕에게 시무책 10여 조를 올린다. 쓰러져가는 모국을 재건하기 위한 그의 상소문은 망국적인 골품제 폐지를 위시로 주창한 것으로 추론된다. 이미 세계적인 석학인 그는 당나라의 선진문물을 체득하였지만 중국의 일방적인 대국관에 맞서 우리 민족의 고유의 역량인 유, 불, 선이 하나라는 '삼교회통'의 경지를 고양하였다. 고려 6대 성종의 명에 따라 제안한 '최승로' (927~989)의 '시무 28조'도 있다. 그 중 22조가 전해지는데 국방, 외교, 내치, 종교, 정치, 경제에 두루 이르고 있다. 최승로는 최치원의 후손이라고 알려진다.

가장 강력한 상소는 '지부상소(持斧上疏)'로 일명 도끼상소이다. 충선왕이 부왕의 후궁인 숙창원비를 범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이에 '우탁'(1262~1342)이 흰 옷을 입고 도끼를 가지고 짚방석을 메고 대궐에 이르러 크게 상소를 간하니 좌우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왕이 부끄러운 기색을 지었다. '율곡'(1537~1584)은 십만양병설의 '시무육조'를 통해 국가의 비극을 예비하고자 역설하였다. 첫째, 어질고 유능한 인재를 충족시킬 것. 둘째, 군민을 보양할 것. 셋째, 재용을 충족히 할 것. 넷째, 변방의 방비를 튼튼히 할 것. 다섯 째, 전마를 준비해 둘 것. 여섯 째, 교화를 밝게 할 것이었다. 그러나 조정과 선조는 이 시급한 상소는 뒷전으로 밀쳐내고 당파 싸움으로 날을 지 세우다 10년 뒤 임진왜란은 맞는다. 국토는 쑥대밭이 되고 백성은 피바다 속에서 도륙된다. 1876년 일제의 강압으로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자 '면암 최익현'이 도끼를 메고 광화문에 엎드려 개항과 조선, 일본 간의 국교체결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 옛날의 시무상소는 국록은 먹는 고위직이거나 경륜 깊은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다. 지금은 어찌 된 일인지 스스로 티끌 같은 백성이 나라님과 대신들 대신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여 상소를 올리자 구름 같은 백성들이 옳다고 한다.

티끌 백성이 올린 '2020 시무상소'는 이렇게 시작된다.

'타국의 역병이 이 땅에 창궐하였는바, 가솔들의 삶은 참담하기 이루 말할 수 없어 그 이전과 이후를 언감생심 기억 할 수 없고 감히 두려워 기약 할 수도 없사온데 그것은 응당 소인만의 일은 아닐 것이옵니다. 백성들은 각기 분하여 입마개로 숨을 틀어막았고 병마가 점령한 저자거리는 숨을 급히 죽였으며 도성 내 의원과 관원들은 숨을 바삐 쉬었지만 지병이 있는 자, 노약한 자는 숨을 거두었사옵니다.' 본론인 시무상소는 7조로 하나같이 절실하여 적확하고도 힘차니 그가 몸뚱이로 깊이 겪은 것이 분명하다.

첫 번째, 세금을 감하시옵소서. 두 번째, 감성보다 이성을 중히 여기시어 정책을 펼치시옵소서. 세 번째,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히 여기시어 외교에 임하시옵소서. 네 번째, 인간의 욕구를 인정하옵소서. 다섯 번째, 신하를 가려 쓰시옵소서. 여섯 번째, 헌법의 가치를 지키옵소서. 일곱 번째, 스스로 먼저 일신 하시옵소서.

신하들의 상소와 간언을 경청하고 받아들인 왕은 성군이 되었으나 온통 간신들로 들러 쌓인 왕의 말로는 밝지 않은 것이 역사의 기록이다. 연산군은 "아니 되옵니다"라며 집단상소를 올리는 신하들을 무참하게 제거하다가 폐위 당하고 왕에서 군으로 강등된다. 반면 세종께서는 당신의 시책에 번번이 반대한 허조와 자신의 즉위를 맹렬하게 반대하였던 황희를 늘 가까이 두셨다.

'조국백서'가 나오더니 뒤따른 '조국흑서'로 국론은 극명하게 나뉘고 무엇보다 지엄하신 나라님과 그 나라님의 마음에 빚이 된 형조판서는 기생충과 병원균보다도 뭇 하다는 비웃음을 받는다. 나아가 일방적인 정책으로 온몸으로 역병을 막아주던 의사들이 병원과 교단을 떠나는 마당에 그 마음을 어루만지지는 못하고 오히려 의사와 간호사들을 갈라치기 하고 있다. 이 지경이 되니 백성들은 붕어, 가재, 어패류에서 개, 돼지 취급을 받더니만 이제는 티끌이 되어서 까지 상소를 그칠 수 없다. 기다렸다는 듯이 영남만인소가 또 등장하여 정권을 꾸짖는데 나라님을 변호하는 변변한 글은 하나 없다. 즐비한 대신들과 지존의 나라님 중에 뉘라서 이들보다 더 영명하고 더 절실할까.

장영주 화가
장영주 화가

누구의 어떤 마음이 국제적 신 냉전의 엄혹한 폭풍이 휘몰아치는 백척간두에 선 이 나라의 앞길을 비추이는 횃불이 될까! 티끌 같은 진인塵人)의 상소는 백성들이 급기야 머리 풀어 제 도끼위에 올려놓고, 옷고름마저 풀어 헤쳐 가슴 터지게 나라를 위해 부르짖는 진인(眞人)의 사무치는 진언(眞言)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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