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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감독의 황혼의 검객(1967년작)
정창화 감독의 황혼의 검객(1967년작)

무협, 무예, 액션

무예의 현대적 부활은 무협영화의 인기를 배경으로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무협(武俠)이란 '무예가 뛰어난 협객(俠客)'을 의미하는 말로, 소설, 만화, 영화, 게임 등에서 중국을 비롯한 동양판타지를 소재로 한 장르로 소개되는 용어다. 영화 장르의 한 종류로서 무협 영화는 오랜 수련과 단련을 통해 연마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결합된 내공의 힘과 그러한 힘을 병장기 등의 도구를 통해 외부의 무력(武力)으로 발산하는 외공의 힘을 대중적 기호에 맞게 가공해서 보여 주고 있다.

서양판타지가 신화와 영웅의 서사에 판타지적인 대상물의 등장과 활약 또는 대립을 주요한 주제로 하는 것에 반해, 동양 판타지로서의 무협은 영웅이 탄생하기까지의 수련의 과정을 통해 내·외공을 성장시키는 것이 주요한 주제로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허리우드에서도 1960년대 이소룡의 진출이후 지금까지 무협, 무예, 그리고 액션을 포함해 '무예액션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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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합작품 와호장룡 (2000년작)
중·미합작품 와호장룡 (2000년작)

무예기술 차용과 액션영화 선호

무예영화 속에 등장한 무예는 태권도, 합기도, 쿵푸, 무에타이, 아르니스 등 다양하다. 각 무예가 발생국가의 전통문화와 함께 했다는 점에서 해당국가의 영화소재로도 사용된다. 또한 영화속 액션에서 무예의 기술을 차용해 문화콘텐츠로서 무예에 대한 대중의 눈을 사로잡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40%정도가 액션장르를 선호하고 있어 영화제작에서도 무예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제6회 베이징 국제영화제에서 방영된 1925년 작품인 '훙샤(紅俠)'는 현존하는 중국 최초의 무협영화로 알려져 있다. 2015년 중국영화자료관에서 복원한 무성영화로 민국 초기 한 소녀는 피난길에 납치되어 갔다가 무예가 출중한 사람에게 구출된 후 여러 해 동안 무예를 배워 복수를 성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약 90년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인데도 단조롭던 무성영화와는 달리 무예 기술을 통한 역동적인 장면들은 현대 영화계에서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중국무협영화 홍사 포스터(1925년작)
중국무협영화 홍사 포스터(1925년작)

# 중국-무협영화 , 일본-무사, 한국-무예액션

중국의 무예영화는 1930년대 이전부터 만들어졌으며, 1940년대 이후부터 촬영기술과 특수효과가 발달하면서 무예영화의 새로운 흥행을 만들어냈다. 중국은 '무협의 고향'으로 불리우며 '무협영화'라는 장르도 성장했다. 이 시기의 무예영화는 문화대혁명을 경험한 현실 때문에 온갖 풍파를 경험한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 것이 많다. 그러나 최근에는 2000년 중국과 미국합작으로 제작된 '와호장룡'이 성공을 거두며 동양무예가 갖는 문화 콘텐츠로서 가능성을 재확인시켰다. 이 작품은 무예영화의 예술성을 한 단계 도약시킴과 동시에 그 아름다움을 전 세계의 관객에게 널리 알린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일본은 전통극인 가부키 등과 서양의 기술이 융합되면서 시작됐다. 1898년을 기점으로 제작된 일본의 영화는 시대극으로서 무사(武士)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대중예술로서 발전하였다. 1940년대와 50년대는 전쟁과 영화가 함께 해 침략이전에 대한 합리화를 위한 영화들이 많았다. 특히 이 당시 일본영화의 황금기를 맞이하며 세계에 알려진 계기는 기모노(着物)와 사무라이(侍)가 등장하며 서양인들에게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금도 일본의 무사들의 활동을 그린 무사영화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 데뷔해 1967년 '황혼의 검객'을 흥행시킨 정창화 감독이 개척자다. 정창화 감독은 중국과 일본이 무협을 소재로 제작하는 것과는 달리 무예의 액션을 돋보이게 해 홍콩 뿐만 아니라 허리우드에서 인정받아 해외에서 더욱 알려진 감독이다. 그가 1967년부터 홍콩에서 활동하며 무예액션영화들이 인기를 끌자 국내에서도 홍콩풍 무협영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이 영화들은 70년대와 80년대초까지 전국의 극장에서 동시상영물로 인기를 독차지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한국배우들이 중국옷을 입고 중국말로 제작하는 등 어색한 면도 있었다. 아직도 중국과 일본처럼 무예액션영화의 장르를 개척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지만, 1990년부터는 한국 무예영화의 액션은 발전을 더해 허리우드와 국내에 많은 무술감독을 배출하고 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에 이어 오는 10월에 개최되는 세계유일의 충북국제무예액션영화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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