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끈을 묶을 땐 풀 때를 생각해 조심스레 매듭을 짓듯 사람의 일이나 관계에서도 자신이 묶은 매듭은 스스로 풀어야한다. 우리 선현(先賢)들도 일을 시작한 사람이 그 일을 마무리하고,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를 가르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종식 시킨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에서도 유일하게 생존했을 정도로 대나무의 생명력은 강하다.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유연함은 속이 비어 있는 둥근 마디의 매듭 때문이다. 대나무의 강함은 그 높이가 아니라 매듭에서 비롯되듯 건강한 사람은 내적인 매듭을 지닌다.

우리 집에 셋째 딸이 태어났을 때 난 그 아이의 이름을 사랑이라 하였다. 남편은 아이가 자라 사춘기가 되면 남학생들이 이름으로 장난치며 놀린다. "당신이 정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집에서 애칭으로 불러요." 그리고 아름다울 가(嘉) 은혜 은(恩) 주님의 아름다운 은혜란 뜻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이는 아무 탈 없이 건강하고 지혜롭게 잘 자라주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정에 셋째 딸의 존재에 대한 감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첫째와 둘째 딸을 낳은 후 무조건 아들이 있어야만 한다는 시어머니의 성화는 스트레스 폭격기였다. 아들을 낳아야만 한다는 마음 졸이는 숙명적인 사명감에 셋째를 가졌다. 다윗이란 태명을 짓고 매일 밤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대학노트에 성경 필사를 했다. 태중의 아기에게 편지를 쓰며 대화를 나누는 태교를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을 낳고온 가족이 기뻐하였다. 힘껏 젖을 빨던 눈이 크고 코가 오똑한 잘 생긴 아들이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심장기형 호흡곤란으로 내 곁을 떠났다.

아기를 잃은 슬픔으로 내 안의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 속에 한없이 좁아져갔다. 눈을 감으면 강보에 쌓여있는 아기가 보이고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야위어갔다, 내게 닥친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몇 날 며칠 밥을 세우며 나의 분신을 떠나보내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울고 또 울었다.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있느냐고 따지듯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불룩 솟은 배가 꺼져 출렁 출렁 내장이 제 자리를 잡아가는 훗배앓이 통증이 채 가시기도 전, 그보다 더 큰 마음 속 빈 공간을 채울 수 없는 아픔이 컸다. 정말정말 힘들 때 그래도 몸조리는 해야 한다며 냉장고에 가득 반찬을 채워주고 간 분들의 따듯한 사랑의 수고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힘들어도 아이를 하나 더 낳아 키우면 잊을 수 있다고 위로 해 주었다.

거친 폭풍우가 지나간 후 태어 난 네 번째 아이가 우리 집 셋째다. 캄캄한 밤하늘에 별이 더욱 빛나듯 아기천사를 키우며 이해 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졌다. 조금씩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내면의 기쁨이 회복되어져 갔다. 아이는 지혜와 키가 자라며 엄마의 위로이자 기쁨, 엄마의 바나바로 필요충분한 감사의 조건이 되고도 남았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다둥이엄마가 된 내 젊은 날은 아픔을 딛고 일어선 견고한 '신앙의 매듭짓기'였다. 모든 신분은 그에 걸맞은 수준을 요구한다. 존귀한 자로서의 귀한 신분에 맞는 수준은 어느 정도여야 할지 되물으며 아픈 만큼 성숙해져야 함을 체득한 것이다. 나를 나 되게 만든 흔들림없는 진리의 매듭짓기. 아프고 힘들었던 매듭은 진정 영과 육이 건강한 사려 깊은 사람으로 살아내기 위한 것이었임을 세월이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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