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나는 수년 전 은퇴했고 이제 칠십이 넘었다. 은퇴 전에는 운전 법규 외에 평생 법을 어겨본 적이 없는 소시민이었다. 하지만 이게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내가 찍은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날 때였다. 현직 대통령은 내란이나 외환이 아닌 한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 내 마음에는 백성이 임금을 해칠 수 없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분의 양친에 대한 고마움과 애처로움도 없었다고 할 수 없다. 그 부친은 우리를 가난에서 구한 사심이 없었던 민족지도자였다.

습관처럼 아홉시 뉴스를 보다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 따로 있었다. 망설이던 끝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간 곳에서 내 생각과 같은 이들을 보았다. 그들이 하는 말이 곧 내 마음이었다. 후련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바른 판단을 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는 희망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 집회에 몇 번 참여하지도 않았지만, 대통령은 탄핵 당하고 내가 찍지 않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잘생긴 사람이 무슨 장관이 된다더니 세상이 시끄럽고 방송이 요란했다. 또 건장하게 보이는 사람은 무슨 총장이라 하더니 이내 나라가 소용들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 사람은 벗기고 벗겨도 양파처럼 잘못한 일들이 줄줄이 드러났다. 그 사람을 편드는 이들이 어쩌면 그리 많은지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 견딜 수 없는 답답함에 다시 그곳에 갔더니 예전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모여 그 장관을 해임하라고 외쳤다. 마음이 뻥 뚫렸다. 어느 날에는 끝도 없이 많은 이들이 모여 소리쳤다. 나도 그곳에 있었다. 그 사람은 장관이 된 지 한 달을 조금 넘기고 사퇴했고 대통령은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그곳 사람들이 대통령 물러가라고 외쳤다. 경제, 외교, 국방 어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단다. 그래도 대통령 물러가라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해가 바뀌고 '코로나19'라는 질병이 나라를 흔들었다. 온 나라가 코로나로 들끓고 지구촌의 축제인 올림픽이 열리지 못하는 데도 한쪽의 외침은 여전했고 사람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광복절에 그들은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킬 집회를 하려했고 극성스런 질병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여 구호를 외쳤다. 사람들은 우리 때문에 코로나가 퍼졌다고 했고 우리는 큰 죄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해로운 바이러스처럼 여겨졌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나를 비롯해 아는 이들은 별다른 욕심이 없다. 젊음을 바쳐 이룬 조국이 잘못돼서는 안 된다는 애국심 하나로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낸 것뿐이다. 그 집회로 코로나가 퍼졌다면 그건 심히 미안한 일이다. 나는 그저 조국이 잘 되기를 바랄 뿐 별 욕심도, 두려움도 없다. 코로나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음성이었다. 시기가 겹쳐 그렇지 뭘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함께 외치는 구호가 내 마음이었고 외치고 나니 시원하고 후련했다.

나는 현직을 은퇴한 노인으로 가끔 광화문에 갔고 앞으로도 갈 것이다. 나는 은퇴한 늙은 데모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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