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과 공감하면 생활 문제 해결도 문제 없어요"

시민 당사자 스스로 생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의 김영진 대표와 김미진 활동지원팀 팀원(오른쪽), 도시재생스타트업 윙윙 이지니 창업지원팀장이 제로 플라스틱 카페 '자양분'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김정미
시민 당사자 스스로 생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의 김영진 대표와 김미진 활동지원팀 팀원(오른쪽), 도시재생스타트업 윙윙 이지니 창업지원팀장이 제로 플라스틱 카페 '자양분'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김정미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대전에서 '누구나 정상회담'은 시민들에게 제법 잘 알려진 대화플랫폼이다. 일상을 바꾸고 싶어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2018년 오픈테이블 방식의 대화모임을 지역에 맞게 재구성했다. 마침 그해 6월엔 지방선거가 있었다. 시민들은 231개 정도의 대화모임을 자발적으로 진행하며 지역 의제를 발굴해 공약으로 제안했다. 대전 시민이면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이 생긴 것이다. '누구나 정상회담'을 기획해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 관계자들을 만났다. / 편집자

#생활 속 실험실, 리빙랩

"정책은 삶 속에 있다. 전문적이고 어려운 주제가 아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생활 영역을 깊이 들여다보면 공감대가 형성되는 의제가 있다."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 김영진 대표는 '누구나 정상회담'을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지역의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 방법을 만드는 '리빙랩(Living Lab)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풀이하면 생활실험실. 2018년 특정 단체가 아닌 시민 스스로 정책을 고민하고 공약으로 제안한 것도 돌이켜보면 리빙랩이었다. 2018년 시즌1과 시즌2가 진행되면서 시범적으로 진행한 실험은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아빠들의 육아고충, 며느리들의 명절나기 등 소소한 주제부터 어린이의 놀 권리 확보를 위한 놀이터 개선, 주차난과 쓰레기 문제까지 다양한 의제들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왔다.

시민 누구나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할 수 있고,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웃들과 공감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 '누구나 정상회담'을 통해 시민들은 생활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민원을 제기하는 문제 제기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해법을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청원과 구별된다.

민간에서 시작된 실험은 2019년 대전시와 함께 하는 민관협력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에서 활동지원팀 팀원으로 일하는 김미진 씨는 '청년의 삶'에 관심이 많았던 시민 참여자였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생과 행복한 인생은 다른 의미잖아요. 돈을 많이 벌어 노후에도 안정적인 삶과 당장 죽더라도 열정을 쏟아 부어 일에 만족감을 느끼는 효능감 사이에서 어떤 것이 성공의 지표가 될 수 있는지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청년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가벼운 주제로 시작했지만 심화 과정을 거치면서 내용이 풍성해 졌고, 일상의 대화가 어떻게 정책이 될 수 있는지 리빙랩 실험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죠."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

대화플랫폼 '누구나 정상회담'을 운영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은 시민 당사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누구나 정상회담'에서 나온 의제를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과 협력해 리빙랩 프로젝트로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2018년 시즌 1·2를 진행했던 혁신청은 2019년 대전시와 협력하며 '누구나 정상회담'을 더 이상 시즌제로 진행하지 않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오프라인 진행이 어려워 온라인을 통한 대화모임을 진행중이다. 그동안 사용하던 '누구나 정상회담' 타이틀은 '누구나 정상회담 @대전', '누구나 정상회담 @랜던파티'로 바꿨다.

2018년 '누구나 정상회담 시즌2'에서 청년의 삶, 청년 노동 아르바이트를 주제로 대화모임에 참여했던 김미진씨는 현재 혁신청 일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대화플랫폼을 통해 발굴된 청년노동과 청년인권 의제를 대전청년유니온과 함께 실행중이다.

 

#의제발굴보다 중요한 이웃

"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의제를 발굴하다보면 느끼게 되는 공통점이 있어요. 문제를 해결했느냐보다 중요한 것인데 바로 사람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김영진 대표는 생활 실험실, 리빙랩은 '과정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과정이 중요한 실험이 바로 리빙랩이고, 의제 발굴 역시 관계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의제발굴은 지속가능한 논의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의제발굴이 앞으로 시민참여나 의제발굴의 핵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계를 통해 의제를 발굴하고 연결하다보면 네트워크가 생기고 참여하는 시민들은 성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역이 선순환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김영진 대표는 시민들이 내놓는 의제는 시대를 관통하는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로 3년차. 누구나 정상회담을 통해 많은 의제가 해결됐다.

시민들로부터 나온 마을활동가와 공유공간 지원 요구는 실제 정책으로 반영돼 지난해부터 사회적자본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마을 공유공간 지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의제도 '모두를 위한 여행'이라는 리빙랩 프로젝트로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다만 아쉬움은 있다. 김영진 대표의 말이다.

"정책을 제안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정책이 실현되는 집행과정에도 시민참여가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은 정책실현 과정 자체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아쉬움이 있습니다."
 

#참여와 만남, 연결의 힘

도시재생스타트업 윙윙의 이지니 창업지원팀장은 과정중심의 리빙랩이 정책 실현 과정에도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을단위로 해결해야 할 의제 가운데는 부서 간 협업이 절실한 사안들이 많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사업을 하면서 일일이 다양한 부서를 찾아다니며 깨달은 것도 이 부분이다.

이지니 팀장은 '주민참여예산제'도 정책제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민 참여를 기반으로 숙의과정을 거쳐 정책 실현 단계까지 민·관협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진 대표는 1년 단위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이 아닌, 마스터플랜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단계별 사업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행정에서 담당할 수 있는 것과,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지니 팀장은 문제해결의 방법을 바꾸는 것이 리빙랩이라면 이제는 지원방식도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누구나 정상회담'을 통한 참여와 만남, 네트워크는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낳는다.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첫 통로(이지니)이기도 하고 시민과 시민, 모임과 모임의 만남(김미진)이기도 하다. 혁신청 활동가 4~5명이 만난 모임만 지난해 530개, 올해 220개였다. 활동가들은 스스로를 '콜센터'라고 불렀지만 고된 과정을 흐뭇하게 기억했다.

새로운 대화모임을 통해 리빙랩을 경험한 시민들 덕분에 일상의 의제 발굴과 시민 참여는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다.

김영진 대표는 연결의 힘을 믿는다. 일상에서 이웃과 이웃이 대화를 시작하면서 모임은 또 다른 모임으로 연결됐고 마침내 제도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누구나 정상회담'은 과정 위에 있다. 다만, 대화로 연결된 시민들은 어제보다 나은 내일, 일상의 긍정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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