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이야기] 이진 서전고등학교 수석교사

교사가 된 이후로 가끔 생각나는 일이 있다. 자꾸 떠올리다 보니 그 장면이 무척 선명한데, 정확한 기억인지는 이제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정확하게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가을이었고, 학교에서 반별 합주대회가 있었다. 오르간, 큰 북, 작은 북 등 몇몇 덩치 큰 악기를 제외하고는 개인이 각자 맡은 악기를 준비해와야 하는 시절이었다.

연습 첫날, 부산스러움 속에 합주대열이 정비됐고, 오르간을 맡은 나는 합주대열에서 조금 벗어나 지휘자와 대열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연습은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다. 몇몇 아이들이 악기를 준비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이 화를 내셨고, 아이들은 기가 죽었다.

둘째 날, 즐거움이나 설렘 대신 긴장감만 가득한 교실, 여전히 악기를 준비해오지 못한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들은 또 혼이 났다.

그리고 셋째 날, 두 아이가 트라이앵글을 준비해오지 못했다고 기억한다. 막 야단치려는 선생님을 향해 그 중 눈이 큰 남자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선생님, 저… 노래하면… 안돼요?"

아…. 트라이앵글을 사달라고 조르다 집에서 야단이라도 맞은 것일까.

열 살의 나는 마음이 아팠다.

그 날 내가 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뭐… 울지는 않았겠지만 하필이면 그 얼굴을 보아버린 나는, 어른이 돼서 그 눈동자를 떠올리며 늘 눈시울을 붉힌다.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됐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반가우면서도 낯설다. 지난 학기 교실에서 딱 네 번 만난 아이들. 어쩐지 올해는 새 학기의 신바람이 내 안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깨진 일상의 틈 사이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걱정이 고여있는 탓일까? 그런 것 같다. 견고한 일상 속에서 익숙한 일들을 해나가던 날들이 못내 그리운 것이다.

내가 흥이 나지 않으면 결국 아이들이 쉬이 상처받을 것이고, 무엇보다 나는 금세 늙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 아이도 나로 인해 마음 아프거나 서운한 마음 들게 하지 말자. 어린 벗들과 함께 배우고 커가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말자. 힘이 좀 남으면 내가 늘 하던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딱 한 발짝만 더 움직여 선을 행하자.

이진 서전고등학교 수석교사
이진 서전고등학교 수석교사

소박하게 다짐해 본다. 눈이 컸던, 이제는 중년이 됐을 그 아이, 아마도 한 가정의 가장일 그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트라이앵글쯤은 그에게 아무런 마음의 상처가 되지 않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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