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소설가

온 나라는 역병으로 수난을 겪고, 그로인해 힘들지만 내색하지 않는 자식들이 안쓰러워 콧등이 시큰함을 느끼자마자 마당에 풀 뽑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무작정 길벗의 시동을 걸고 떠났다. 뉴스는 더 숨통을 죈다. 분립은커녕 삼권이 청와대 손아귀에 있으니 민주국도 아니고 공산국도 아닌 이상한 나라, 세상 돌아가는 꼴이다. 목적지도 없이 무제한 달리고 싶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가가 촉촉해 진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주를 지났다. 선산IC로 나와서 구미 금오산으로 갔다. 아마 지난봄에 영면하신 오빠 생각이 났나보다. 금오산 주차장 어귀에 있는 유명한 한우 집에서 육개장으로 아점을 때우고 커피 잔을 들고 나오는데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던 한 여인이 앞을 막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심더, 혹시 나 모르겠어예?" "글세 어찌보니 안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니 오계자 아이가?"

그렇게 우리는 강산이 수차례 변할 동안 잊고 살았던 친구, 맛깔스럽고 찰진 사투리가 정보따리를 풀게 하는 여고 동창을 만났다.

충청도 어디 산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내 차림새는 화장기도 없고 외출복도 아니라 닮은 사람인가 했단다. 마당에 풀 뽑다가 울화가 치밀어 후다닥 일어나 차 끌고 나왔다는 내 설명을 듣고, 차아암 자유롭게 잘 살고 있다며 부럽단다.

캐나다 이민 생활 접고 귀국한지 4년 정도 되는데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요 모양 요 꼴이냐고 남편은 다시 캐나다로 가고 싶다며 조른단다. 답답하다며 아들 내외가 아직 토론토에 있으니까 다니러 가셨단다. 고국이 그리워 가족을 두고 고향을 찾았더니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청문회는 하나마나 반대해도 임명할 걸 왜 하느냐며 민주국도 아니고 공산국도 아닌 이상한 나라란다. 듣고 보니 현실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귀국하자마자 정치 난장판을 겪어야 했고, 이젠 역병까지 난리니 힘들고 외롭게 생활한 것 같다. 선산에 계시는 어머니 드리려고 수육이랑 육개장 포장을 했단다.

"친정엄마 살아계실 동안 자주 찾아볼라꼬 친정 가까운 구미에 자리 잡았다아이가,"

세계가 들썩이는 역병은 다행히 잘 피하고 계시지만 나라 돌아가는 꼴이 해도, 해도 너무하다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한다.

"야야, 민주국가의 가장 기본이 삼권분립 아이가, 우짜다가 입법, 사법, 행정이 모두 청와대 손아귀에 있노. 야당 뭐하노, 속 터진데이."

"조선 말기 나라꼴이랑 너무나도 흡사해. 수십 년 동안 단단하게 뭉쳐 온 친일의 지하조직은 고종을 감금 시키고, 바른 말 하며 목소리 높이면 죄목 만들어 식솔까지 죽이는 그 때, 목숨 내걸고 옳은 말해서 좁쌀만큼의 효력도 얻지 못하니 누가 감히 나서겠노. 지금이 딱 그렇다. 같은 편이라도 기대에 앞서면 장애가 될 가능성을 생각해서 미리 날개 부러뜨린다."

"남편이 믿을 수 없는 문서를 카톡으로 받고 저렇게 다시 캐나다 가자고 서둔다."

나는 혹시 나도 받은 그거일까 싶어 물어보았더니 바로 그거다.

'서울시 25개 구청장 중에 출신지역이 인천, 서울, 경북, 경기 각 1명이고 21명이 몽땅 호남 출신이더라. mbc 간부 59명은 몽땅 호남이고, 내각 구성 국무총리 이낙연과 정세균 두 분부터 각 부서 장관과 육군 해군 참모장까지 몽땅 호남이고.' 죄다 나열 하려면 끝이 없으니 남편은 수십 년 정든 캐나다가 내 조국보다 더 편안하단다.

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수필가

나는 그 심정을 이해하고 솔직히 부럽기도 했다. 미용실에서 젊은 남자 분께 그 문서를 보여주니 허위라면 이렇게 실명으로 문서를 만들 수 없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그 문서가 허위기를 간절히 바란다. 수십 년 만에 만난 벗과 슬픈 대화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는 한숨만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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