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긴 고향마을 모습 생생… 찾아갈 수 없어 그리워"

장병만 씨가 '내 고향 용곡' 책자를 펼치면서 옛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장병만 씨가 '내 고향 용곡' 책자를 펼치면서 옛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중부매일 정구철 기자]'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용곡리353번지'

지금은 사라진 주소지만 수몰민 장병만(67) 씨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곳이다.

그가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이기 때문이다.

장 씨는 매년 설명절이나 추석명절만 되면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사무친다.

지난 1985년 충주댐이 준공하면서 그의 고향마을인 용곡리는 충주댐 물속에 잠겼다.

청풍면 용곡리는 수몰 당시 전체 126가구 가운데 안동 장 씨와 청풍 김 씨 성을 가진 주민이 100가구나 될 정도로 두 성씨의 집성촌이었다.

안동 장 씨인 병만씨는 10대조 이전부터 이곳에서 뿌리를 박고 살아온 토박이다.

이 때문에 그는 고향이라는 말만 나와도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하다.

장 씨는 청풍면에 있는 양평초등학교와 청풍중학교, 청풍상업고등학교까지 모두 고향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수몰 당시 그는 30대 초반의 젊은이로 조상 대대로 내려온 농사일을 하면서 용곡리 이장까지 맡아 마을의 궂은일을 했다.

충주댐이 생긴 뒤에는 이장으로서 마을사람들의 보상문제 등을 처리하느라 다른 사람들보다 1년 정도 늦게 충주로 이주했다.

고향에서 부인 한순자(60) 씨와 결혼해 큰아들이 세살이 되던 해에 충주로 이사를 나왔으며 충주에서 작은아들을 낳아 2남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장 씨의 두 아들은 용곡리에 대한 기억이 없다.

농사일 밖에 몰랐던 그는 처음 충주로 온 뒤 막상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저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일을 찾아 공사현장에서 2년 정도 노동일을 하다가 10년 정도 부동산중개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충주시청에 공무직으로 들어가 23년을 성실하게 근무하고 지난 2017년 퇴임했다.

충주댐 건설로 장 씨와 함께 충주로 나온 용곡리 출신 수몰민들은 청풍면 용곡리의 첫 글자를 따 '청룡향우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2개월에 한 번씩 만나고 있다.

서른 명 남짓한 이들은 만날 때마다 어린시절의 추억과 고향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시간가는 줄 모른다.

장 씨는 "수몰이 되고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수몰 당시에 60대가 넘었던 마을의 어르신들은 거의 돌아가셨다"며 "모임을 가질 때마다 한두 분씩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같은 마을에서 함께 자라면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 두 명도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말끝을 흐리는 장 씨는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장 씨에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절실하고 애틋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수몰 당시 대부분의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 타지로 이주했지만 13가구의 주민들은 용곡리에 그대로 남아 물속에 잠기지 않은 높은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 마을을 조성해 살고있다.

용곡리를 떠난 수몰민들은 향수를 달래기 위해 3년에 한번씩 이곳에 모여 '용곡리 출향민 한마당축제'를 열고 있다.

이 행사 때면 200명 정도의 출향인들이 마을로 찾아와 서로 간 안부를 묻고 옛정을 나누며 회포를 푼다.

용곡리 출신 수몰민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내 고향 용곡'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출향인들의 연락처와 수몰되기 이전의 용곡리 마을 사진, 마을의 지명과 유래, 출향인들이 쓴 시와 글 등이 담겨있다.

장 씨와 같은 마을에 살던 수몰민들은 고향이 생각날 때마다 이 책을 들여다보며 향수를 달래곤 한다.

이들은 가뭄이 심할 때면 혹시나 물속에 잠긴 고향 마을이 물 밖으로 드러날까 하는 마음에 살던 곳을 찾아가 보기도 한다.

청풍중학교 졸업생인 장 씨는 어릴적 친구들의 모습을 자주 보기 위해 '재충 청풍중학교 동문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조금이라도 고향에 대한 끈을 놓치고싶지 않은 까닭이다.

청풍중학교 동문회는 매년 봄, 가을에 2회씩 한마당행사를 갖는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행사를 열지 못했다.

동문들끼리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전하며 아쉬움을 달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장 씨는 이번 추석 명절에는 교사로 재직 중인 며느리를 배려해 서울에서 살고있는 큰아들 내외도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

혹시나 모를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쓸쓸한 추석명절을 보내야 할 상황이다.

1985년 충주댐이 건설돼 충주시 살미면과 제천시 한수면, 청풍면 일부가 물에 잠기면서 많은 주민들이 장 씨처럼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다.

댐 건설로 인해 길이 끊긴 수몰민들은 명절이면 '충주호 숭조회'가 운항하는 배를 타고 물길을 통해 성묘에 나서고 있다.

충주호 숭조회는 1천700여 명의 회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연간 2천∼2천600명이 이 배를 이용해 벌초와 성묘에 나서고 있다.

장병만 씨는 "저녁무렵이면 집집마다 밥짓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던 옛 고향마을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지만 그럴수록 갈 수 없다는 아쉬움만 더욱 커진다"며 "이제는 그저 고향 사람들만이라도 서로 건강하게 오래 보면서 옛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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