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문학] 허건식 WMC기획경영부장·체육학박사

씨름은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해당 문화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형태와 명칭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유럽권에서는 '레슬링(Wrestling)'으로 통용되고, 중앙아시아의 '크라쉬(Kuradh)', 몽골의 '부흐(Buh)', 일본의 '스모(Sumo)' 등으로 불린다. 우리의 씨름은 각저(角)와 상박(相撲) 등의 한자로 기록되어 있고, 고대 고분벽화와 그림, 그리고 다양한 문헌으로 전해 오고 있다. 이러한 각국의 민족씨름은 세계 어디에서나 향유되는 대중적인 놀이였고, 현대사회에서도 각종 명절이나 축제에서 단골 전통스포츠 경기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성인 씨름경기의 경우 우승자에 대한 예우는 각국이 비슷하다. 유목민의 경우는 그들의 부(富)의 상징인 양(羊)을 상으로 받으며 전사(戰士)라 불었으며, 농경사회에서는 농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황소를 상으로 받으며 '장사(壯士)'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러한 씨름은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전통 명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와 축제장 등에서 지역마다 특성을 가지고 씨름대회를 개최한다. 특히 각국의 명절에 열리는 씨름경기는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이자 즐길 거리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는 씨름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기능 때문이며, 지역문화에 가장 의미 있게 노출될 수 있는 전통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우리 씨름의 경우 원래 해당지역 두레의 외형적 유대를 결속시키는 방법이었다. 국가에서는 무예의 한 방법으로 장려해 유능한 무사를 선발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농경사회에서는 힘센 농사꾼을 가리는 방법이자 놀이의 한 방법으로 공동체 사회의 경쟁심을 만들어 냈다. 개인 경기이지만 두 패로 나누어 경쟁하는 단체경기 형태가 등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와 같이 농경사회에서의 씨름경기는 농사철이 지나고 농한기이면서 가장 풍요로운 시기에 마을 제사에서 마을의 안녕과 단결을 기원하며 씨름판을 벌였다. 이러한 씨름판에 농악놀이와 같은 흥이 따라 붙었고 한 마을이 아닌 이웃 마을과의 대항전으로도 확대되었다. 이러한 마을 대항전은 자연스럽게 정기적인 장이 열리는 장터에서 씨름판을 열어 지속적인 대항전이 펼쳐졌다. 이렇다보니 직업적인 씨름꾼이 생기기도 했고, 유명한 씨름꾼은 고을의 원님이나 운이 좋으면 임금 앞에서 씨름을 해 무사(武士)로 발탁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후기부터 우리 씨름은 경기체계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1920년대 공식 씨름단체와 경기규칙이 만들어졌다. 그 후 현대 우리 씨름은 서구에서 유입된 축구와 농구, 배구 등과 대등하게 미디어를 차지하면서 안방에서도 관람할 수 있는 스포츠로 인정받고 있다. 씨름경기에서 두 선수의 힘의 대결에서 보여주는 긴장감, 응원을 통해 승리를 맛보는 대리만족, 각본은 없지만 최근 씨름 스타들의 경쟁은 재미있는 드라마처럼 바뀌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생각할 수 없었던 씨름대회가 이번 추석에는 TV와 유튜브 등의 온라인 매체를 통해 가정과 스마트폰에 송출됐다. 얼마전 대한씨름협회가 코로나-19 음성 확인 진단서를 제출한 선수들이 참여하는 무관중 추석장사씨름대회를 개최하기로 한데 따른 것이다. 지난달 29일부터 4일간 개최된 이번 대회는 남자부 4체급(태백급·금강급·한라급·백두급)에서 158명, 여자부는 3체급(매화급·국화급·무궁화급)에 36명이 출전해 '꽃가마 쟁탈전'을 치렀다. 특히 몸무게 150㎏ 상한제를 도입된 이후 화려한 씨름기술과 더불어 모래판을 호령하는 스타들의 대결이 집밖 외출이 조심스러워지면서 TV 앞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던 이번 추석연휴 기간에 적지 않은 재미를 주었다.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허건식 WMC기획경영부장·체육학박사

이번 대회의 TV중계해설을 했던 천하장사 이태현 용인대 교수는 최근 씨름진흥원 이사장을 맡으면서 "코로나-19의 위기에도 지금 우리 씨름은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있고, 잠자는 인류무형유산이 아닌 미래에도 끊임없이 이어질 민족 스포츠"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의 말처럼 어쩌면 씨름이 오랜 역사 속에서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몸 속 깊은 곳에 강한 힘을 갈망하고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는 피가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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