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코로나 단계적 조치로 오랜만에 찾아간 할아버지는 기력이 없었다. 다녀와서 마음이 쓰인 생활지원사 선생님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연락이 안된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초조했다. 상황을 보고받은 은미씨도 수차례 전화를 시도했다. 가슴이 뛰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하던 일을 제쳐두고 나섰다. 도착해 대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다. 이러면 안 된다. 늘 뭐하러 왔냐며 심드렁하셨어도 내심 반가워 문을 열어주시던 분이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인기척도 없다. 급히, 119에 전화를 걸었고 역시 같은 마음으로 달려온 구급대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쓰러져 계신다. 전화기는 저만치서 계속 벨이 울린다. 모두 놀라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으로 모셨다.

코로나 상황에 병원에 입원하는 건 더 어렵다. 열이 있어야 입원치료가 가능하다. 어렵게 다시 정신을 차리신 할아버지를 어디에 모시란 말인가. 집에 다시 모셔다드리기는 회복이 더디고 돌봄이 더 어려워진다. 결국, 동네 요양원에 비어있던 침상 하나를 구했다. 흔쾌히 침상을 내준 요양원은 평소 동네 네트워크가 잘 되던 곳이다. 요양원에 일시 입소를 하고 한시름 놓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다시 쓰러지셨다. 심폐소생술에 익숙한 요양원 원장님 덕에 할아버지가 다시 숨을 쉬신다.

그렇게 다시 진료를 마치고 입원하신 할아버지 곁을 누가 지켜야 한다. 서로 눈치라도 볼 것 같지만 요양원과 어르신 담당 맞춤 돌봄 선생님들은 물론 동네 공무원들도 한마음으로 나선다. 서로 돌볼 수 있다고. 가슴 찡하다. 이래서 사회복지를 하는 것이다. 우선, 주무 담당자가 밤에 돌보기로 하고, 이튿날부터는 담당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2시간씩 교대로 돌보기로 했다. 필요하면 요양원과 맞돌 사업단에 연락을 취하기로 하고 병원을 나섰다.

9월 24일, 율량사천동에서 일어난 일이다. 몇 줄 글로 담기엔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을까. 그래도 놀라운 건 마침 할아버지의 일을 예견한 것처럼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 평소 어르신의 안부를 묻던 노인맞춤돌봄 사업의 은미씨와 119, 주민센터, 요양원 등이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동네 돌봄 네트워크가 잘 작동했기 때문이다. 평소 보이지 않던 네트워크가 이렇게 잘 준비되어 있었다니.

오랫만에 뿌듯하다. 사회복지사인 게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코로나 위기에서 우리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자조 섞인 반성을 하던 참이다. 한 생명을 구한 이 이야기를 현장에 있던 이에게 들으면서 괜히 어깨가 올라간다. 우리가 바라던 모습이다. 느슨한 듯 지내다가도 위기 상황이 오면 모두 빠르게 움직인다.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낸다. 돌보겠다고 서로 나서던 모습도 흐뭇하다. 더 반가운 건 공공의 움직임이다. 내가 홀로 지내도 나를 맞이해 주고 돌봐 줄 이가 있다는 건 정말 살맛 나는 일이다. 무연고자를 돌보는 일이 '지침상' 그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해도 그 지침도 사람이 만들고 사회가 만드는 것이니 우리 사회가 살만한 것이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위기대응을 한다는 건 평소에 준비가 잘 되어 있음을 뜻한다. 건강 악화나 감염병, 화재, 기후변화 등은 우리 삶 속에서 아무런 경고 없이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예측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사회의 위기상황 대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지역에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전에 위기대응조직을 꾸리고 서로 역할을 구축해 놓아야 한다. 그게 준비된 네트워크다. 그것이 잘 작동하는 동네를 만드는 게 코로나 이후의 일상을 살아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꼭 그 일에 참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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