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사람] 김정호 청주랜드 진료사육팀장

지난해 9월 청주동물원에서 촬영한 영화 '동물, 원' 개봉 1주년을 기념해 출판을 앞두고 있는 표지 사진을 찍기 위해 직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필자 제공
지난해 9월 청주동물원에서 촬영한 영화 '동물, 원' 개봉 1주년을 기념해 출판을 앞두고 있는 표지 사진을 찍기 위해 직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필자 제공

작년 이맘 때 출장이 잦았다. 우리 동물원에서 3년 넘게 촬영했던 다큐멘타리 영화 '동물, 원'의 전국 개봉에 맞춰 영화를 알리는 자리에 감독님과 출연배우(?)로 나갈 일이 많았다. 한번은 MBC 라디오에 출연했는데 진행자가 가수 양희은 선생님이었다.

내가 대학을 다녔던 90년대는 80년대의 통기타, 청바지가 상징이었던 청년문화가 어느 정도 이어지던때라 포크송의 대표주자였던 선생님을 잘 알고 있었다. 동물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하자 과거 선생님은 자신이 큰병이 생겨 입원했던 병원이 지금의 창경궁, 예전에는 창경원이라고 불렸던 동물원 앞이었고, 밤에는 혼자 누워있던 병실에 온갖 야생동물들의 소리가 들려 기이한 경험이었다고 하셨다.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니 선생님은 1982년 서른살 나이에 난소암 말기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수술을 위해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던 기록이 있었다. 계절은 이른봄, 선생님은 병실 창밖 목련꽃을 보며 자신의 운명을 상상하셨을거 같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선생님이 그때의 심정을 가사로 쓴 노래가 '하얀목련(1983)'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동물원 사무실 창문밖에도 목련나무가 있어 스무해동안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아왔다. 늘 목련꽃의 마지막은 작가 김훈의 표현처럼 백제가 무너지는듯 했다. 화려한 큰 꽃이 어느날 갑자기 툭하고 떨어지는데 고통을 숨기다가 갑자기 이별하는 동물원 동물들을 닮은 꽃이라 생각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 노래는 누구든 어렸을때 한번쯤 겪어봤을 키우던 개에 대한 이야기 '백구'다. 방송 중간 쉬는 시간에 여쭈어보니 '백구'는 선생님의 실제 이야기를 가수 김민기가 전해 듣고 만든 노래라고 한다.

나에게도 어린시절 '백구'와 같은 사연이 있지만 성인이 되고부터 작년까지는 집에서 개를 키우지 않았다. 아파트에 살면서 좁은공간에 개를 키우는것은 개에게도 별로라고 생각했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야생동물들에 매력을 느끼다보니 사람에게 의존적인 반려동물에게는 관심이 덜 갔었다.

대신 동물원 동물병원에는 오래전부터 개를 키운다. 작고 까만색이라 함께 일하는 조우경 수의사가 깜순이라고 지었다. 깜순이는 유기견보호소에 있었던 개다. 공간이 한정된 보호소는 오랫동안 분양이 되지 않는 개들을 불가피하게 안락사 시킨다. 우리가 방문했던 그날이 깜순이가 그런 운명에 처해지는 날이었다. 지금은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안락사 시킬 대상이면 그전에 멸종위기동물 번식연구를 위해 활용할 생각으로 데려온 것이다. 깜순이를 마취하고 난소를 떼어낸 후 약속대로 안락사를 해야하는 순간 망설여졌다. 결국 마취에서 회복되는 깜순이를 놓고 과송별회식에 참석했다. 회식 중에도 깜순이가 자꾸 신경쓰여 다른 부서로 가시는 분들게 양해를 구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동물원으로 향했다. 동물병원에 올라가 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깜순이가 달려와 내 손을 핥았다. 소주 몇 잔에 마음이 헐거워진 탓일까, 깜순이에게 미안해서일까, 눈물이 흘러 당황스러웠다. 언제부터 동물에게 감정을 섞지 않고 수의학적 판단만 하려던 나였는데 말이다.

깜순이가 동물병원 개가 된지 7년이 됐다. 이제는 치아도 빠지고 검은털도 희끗희끗해졌다. 방학에 실습왔던 수의대생들이 깜순이의 간식과 파란색 어깨끈을 사가지고 깜순이를 보러왔다. 나이든 몸을 일으키기 귀찮을텐데 깜순이는 학생들을 최선을 다해 반겨준다.

김정호 진료사육팀장
김정호 진료사육팀장

얼마 전 영화 '동물, 원' 개봉 1주년을 기념하는 팝업책 출판을 앞두고 표지에 들어갈 직원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동물원에서 각자 하는 일을 상징하는 소품을 들고 나오기로 했다. 체중계, 포획망, 청진기, 키보드, 손수레, 공구를 들고 찍었다. 물론 깜순이도 새로 선물받은 파란색 어깨끈을 하고 동물원의 일원으로서 멋진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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