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숙 비봉초등학교 수석교사

가을은 바람소리부터 다르다. 사사삭, 사사삭~~ 나뭇잎 부딪는 소리에 토실토실 매끈매끈 알밤이 투드득 투드둑~~. 코로나19로 사상 유례 없던 어려움 가운데 유독 길었던 장마와 집중 호우, 몇 번의 태풍이 지나간 한 해 가을이다. 들판엔 그래도 여전히 누런 황금물결이 햇살에 반짝인다. 더러는 태풍과 집중호우에 벼이삭이 쓰러져 있고 과수 나뭇가지가 부러진 곳도 있지만 여전히 강건하다. 두어 달 전 바로 옆의 하천이 넘쳐 비닐하우스가 잠겼던 곳을 살펴보았다. 진흙더미였던 곳이 말끔해지고 어느새 오이 줄기가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다. 어려운 상황을 견디어 낸 그 모습에 힘이 있다. 반갑고 고맙다.

얼마 전 회복적 생활교육 연구회 월례회가 있었다. 매월 만나서 소통과 공감의 생활교육에 대해 질 높은 강의도 듣고 선생님들의 지도 사례 나눔이 오가던 자리, 직접 체험하며 배우고 서클을 통해 속 깊은 대화가 오가던 연구회였다. 그런 연구회가 올해는 코로나로 직접 대면이 어려운 상황이 벌어져 임원진 측에서 사상 처음으로 화상연수로 기획했던 것이다. 


화상으로 연구회 선생님들 얼굴을 보니 실제 대면인 듯 생동감이 있었다. 이게 될까? 의구심은 물러나고 화상으로 서클이 진행되는 동안 점점 몰입이 됐다. 서클을 기획한 선생님의 진행에 의해 화상으로 가능한 몸놀이 마음 놀이로 시작됐다. 그날 서클의 주제 질문은 '코로나19가 나에게 준 유익함은 무엇인가?'였다. 서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팔을 다치고 발 수술을 했던 선생님들은 다행히 등교수업을 안 해서 몸이 회복할 시간을 선물 받았다고 했고, 어떤 선생님은 외식을 못하니 자연스레 집 밥을 많이 먹을 수 있었고, 덕분에 요리 실력이 늘어서 가족들의 인정도 받았다고 했다.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았다는 이야기, 바깥 외출을 못하니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이야기 등이 나왔다.


그 중에 단연 많았던 이야기가 코로나19 덕분에 수업 영상을 만들기 위한 디지털 활용 능력이 늘었다는 것이었다. 아마 우리가 교사 집단이었기에 다수의 의견이 그랬을 것이다. 필자도 교직생활 30년이 넘는 동안 올해 처음으로 녹음하고 영상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는 일을 했다. 줌 활용 기능도 살펴보고 클로바 더빙 기능도 익혀 연습도 해 보았다. 물론 안 해본 일을 해야 하니 쉽진 않았다. 여기저기 이웃 선생님들에게 묻고 또 물어보고 유튜브 영상도 찾아 들어보며 많은 시간을 원격수업 영상 만드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처음엔 쉽게 이해되지 않고 어려웠지만 이제는 한편 한편 영상 콘텐츠가 완성될 때마다 뿌듯하다. 내가 코로나로 얻은 소득이다.


직접 만나서 상호작용하며 배우는 것이 교육이라고 알고 있던 나에게 코로나19는 혼란스러움을 안겨주었다. 직접 만나지 말고 교육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화상으로 연구회 월례회를 하며 '아, 이렇게도 되는구나. 비대면이 일상화 되는 현 교육 상황에서 이렇게 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상황이 바뀌었으면 얼른 알아차리고 다른 방법을 찾아 일단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바뀐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암울하게 바라만 보거나 포기하지 않는 힘, 어떻게 살려볼까 궁리하고 이리저리 실행해보는 힘, 그것은 바로 코로나19로 인한 우리 교육 생태계의 변화를 읽는 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중요한 것은 바로 그때그때 변화한 상황을 빨리 인지하고 거기에 맞는 새로운 대처능력을 키우는 힘, 그런 유연함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닐까? 변화 읽기에는 도전이 있고 희망이 있고 성장이 있다. 


일찍이 선각자는 인생 무상(無常)을 설파하셨다. 시시각각 모든 상황은 변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이제는 보행기에 의지해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는 구순의 노모와 걸음 속도를 맞춰 걸으며 이렇게 무상(無常)을, 그리고 변화 읽기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박현숙 비봉초등학교 수석교사
박현숙 비봉초등학교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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