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한규 농협청주교육원 교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위축과 실업증가 등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식량위기에 대한 경고도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저소득 및 중위소득 국가의 2억6천500만 명이 코로나19 때문에 식량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얼마 전 CNN은 국제구호단체 옥스팜 보고서를 통해 올해 연말 식량위기로 인해 코로나19 사망자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숨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세계 각국이 감염 전파를 막기 위해 봉쇄조치를 취하거나 국경을 폐쇄하면서 식량 수급이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주요 식량수출국들은 자국 내 식량 확보를 위해 수출물량을 제한하거나 중단하고 있다. 위기극복을 위한 국가간 상호협력과 국제공조는 부진하고,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부활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서방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확산될 조짐마저 보인다.

식량 안보를 그저 남의 일로 생각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 2018년 기준 식량자급률은 46.7%, 사료용을 포함하는 곡물자급률은 21.7% 수준으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밀, 옥수수, 콩 등을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세계 5대 식량 수입국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식량위기는 공급량 부족에 기인한 과거와는 달리 바이러스에 의한 글로벌 공급체계의 붕괴가 주요 원인이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으로 그 여파를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돈, 경제력이 있어도 식량을 구하지 못할 수 있다.

2011년 러시아 지역의 극심한 가뭄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이 곡물수출을 중단하자 국제 곡물가격이 폭등하였다. 식량 수입 의존도가 높은 튀니지, 이집트 등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에서는 물가상승을 견디지 못한 시민들이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일으켜 결국 정권퇴진까지 이어졌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해야 최선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국내 곡물 자급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밀, 옥수수 등 주요 곡물의 수입이 미국, 호주, 브라질 등 일부 국가에 편중되어 있다. 만일 수출 제한 등 식량위기가 발생하면 해외로부터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이다. 수입 국가를 다변화하고, 해외농업개발 사업 참여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싱가포르는 식량공급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나, 약 170여개 국가를 통한 탄력적인 농식품 수입전략으로 경제 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2019 글로벌 식량안보지수(GFSI)'에서 1위를 차지했다.

김한규 농협청주교육원 교수
김한규 농협청주교육원 교수

본격적인 벼 수확 철을 맞았다. 올해는 사상 초유의 긴 장마와 집중호우, 태풍 등 기상이변으로 쌀 수급 예측도 쉽지 않다. 앞으로도 더 잦은 기상이변이 나타날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면 언제 세계 곡물시장의 급변으로 식량위기의 파고가 쓰나미처럼 닥칠지 모른다. 편안할 때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위험과 곤란을 미리 생각해 대비하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마음이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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