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시대, 비디오 판독이 '공정성' 이다

경기를 앞둔 매호영 심판(사진 가운데)
경기를 앞둔 매호영 심판(사진 가운데)

[중부매일 유창림 기자]자장면을 먹기 위해 골키퍼로 축구를 시작했지만 점프를 해 팔을 뻗어도 골대에 닿지 않아 포지션을 바꾼 소년이 성장해 협회소속 선배의 권유로 심판에 입문했다. 그 심판은 나이가 들어 무릎 부상을 입었고 필드를 떠나야만 했다. 그런 실연은 전화위복이 돼 국내 VAR 1호 심판이라는 타이틀로 이어졌다. 그는 VAR 심판을 '시청자들도 함께 본다는 생각이 긴장감으로 이어지고 경기 흐름을 뒤바꿀 수도 있다는 중압감이 사명감으로 이어진다'고 표현했다. 또 충남 천안에서는 지역 출신 유일의 프로심판이라는 닉네임으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선배보다 후배들이 많은 나이가 됐고 후배들을 위해 프로심판의 체질 개선을 주장하는 매호영 심판(50)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축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 워낙 몸이 약해서 조회시간에 빈혈로 쓰러지곤 했는데 축구를 너무 좋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시합에 나가면 자장면을 먹을 수 있었다. 그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생각한다. 철없이 운동하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세계청소년월드컵을 보면서 축구에 대한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됐다. 막연히 공만 차다가 '나도 저 선수들처럼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라는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동기 9명 중에 유일하게 천안중학교 축구부 특기생으로 진학하게 됐다. 그때 포지션은 골키퍼였는데 중학교 1학년이 지나가도록 키가 자라지 않아서 아무리 점프를 뛰어도 손이 골대에 닿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포지션을 바꾸게 되었다."
 

축구 심판이 된 배경은?

"충남축구협회 심판이사로 계시던 강대연 선배의 권유로 심판에 입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무국장으로 협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강 선배의 선수 출신이니 금방 배울 수 있다고 하는 권유에 이끌려 심판이 됐다. 당시는 시합 때 항상 심판이 부족했었다. 입문 당시몸무게가 90kg 가까이 됐는데 심판을 하기 위해 16kg가량을 감량했다. 건강도 좋아지고 하다 보니 또 다른 매력이 있고 게임이 끝나고 승자, 패자 선수와 감독들이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넬 때는 또 다른 뿌듯함과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축구 심판을 보면서 기억나는 일은?

매호영 심판이 흥분한 선수들을 진정시키고 있다.
매호영 심판이 흥분한 선수들을 진정시키고 있다.

"습관적으로 항의를 많이 하는 선수가 있었다. 내가 심판을 본 경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습관적인 항의가 시작됐다. 전반이 끝나고 후반전 30분 동안 상대 팀에 반칙을 주지 않았다. 퇴장이나 경고 정도의 과격한 반칙이 없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반칙이 주어지지 않으니 팀이 술렁이더라. 같은 팀 동료들이 오히려 그 선수에게 뭐라고 하더라. 그 뒤부터 그 선수의 매너가 상당히 좋아졌다. 지금도 운동장에서 보면 저 멀리서 달려와 예의바른 인사를 건넨다. 다른 동료심판들이 많이 놀라면서 '저 선수는 왜 선배님께 유독 예의가 바른가요'라고 물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다."

 

대한민국 1호 VAR 심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주심으로 경기를 진행하고 있는 매호영 심판.
주심으로 경기를 진행하고 있는 매호영 심판.

"부상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무릎 부상으로 체력테스트에서 떨어졌다. 3개월 후 다시 도전해서 통과는 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축구위원장으로 계신 조영증 위원장이 VAR 심판 전문성을 설명하시며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라고 권유하셨다. 솔직히 필드에 대한 미련은 있었지만, 나이와 상황을 고려해야 했었다. 후회는 없다. VAR이 적용되고 경기의 공정성이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됐다. 시청자들도 함께 본다는 생각이 긴장감으로 이어지고 경기 흐름을 뒤바꿀 수도 있다는 중압감이 사명감으로 이어진다."

 

축구 심판은 야구와 달리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 이유와 개선돼야 할 점을 설명해 달라.

"일단 야구는 연봉제로 하다 보니 비시즌에도 급여가 나오고 또 어느 정도 복지혜택이 주어져서 자녀들 학자금 혜택도 받는다. 축구는 수당제로 하다 보니 실수가 있으면 바로 출전정지처분이 떨어지고 소득으로 연결돼 생활하는데 많은 타격을 받는다. 일반적으로는 축구심판이 수당이 많다고 하는데 그 부분은 인정하지만 수당을 좀 줄여서라도 기본급을 만들어주고 남은 부분을 수당으로 채워주면 비시즌기간에도 부담되지 않게 시즌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로축구협회가 심각하게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히딩크 감독과의 에피소드가 있는 것으로 안다. 소개해 달라.

스페인 전지훈련에서 만난 히딩크 감독과의 기념사진.
스페인 전지훈련에서 만난 히딩크 감독과의 기념사진.

"스페인 전지훈련을 갔을 때 처음엔 지금 토트넘에 있는 조제무리뉴 감독을 만났다. 다들 사진 찍고 싶어 해 사진을 요청했는데 한마디로 거절당하고 경호원들에게 저지 당했다. 그런데 같은 장소에서 히딩크 감독이 나타나셨다. 한국프로축구심판이라고 소개드렸더니 엄청 반기시며 먼저 사진찍자고 하시더라. 그게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