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여행]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비트라 소방서 (Vitra Fire Station, 바일 암 라인, 독일, 1990~1994) / 건축의 탄생에서
비트라 소방서 (Vitra Fire Station, 바일 암 라인, 독일, 1990~1994) / 건축의 탄생에서

실제로 지은 건축이 없어 페이퍼 아키텍트(Paper Architect, 종이 건축가)라고 불렸던 건축가가 있었다.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설계자로 잘 알려져있다. 자하 하디드는 주로 유려한 곡선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와 광저우 오페라하우스 건축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원래 그녀의 건축 트레이드 마크는 뾰족하고 날렵한 직선을 가진 건축이다. 그녀는 젊은 시절에 러시아 절대주의에 영향을 받아 해체주의 미술을 건축에 응용했는데, 일반적인 건축과는 달리 소실점있는 투시를 사용하여 왜곡된 형태의 건축을 만들어냈다. 그녀의 실험적인 건축이론은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는 등 건축계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기술적으로 아주 까다로워서 실제로 시공까지 가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하디드는 자신의 건축이론이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꾸준히 건축 공모전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면서 건축계에서 입지를 쌓아갔다.

그녀는 가구디자인에도 남다른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로 비트라(VITRA) 가구회사에서 의자 디자인 의뢰가 들어오더니, 이어서 비트라 캠퍼스 건축설계 의뢰가 들어왔다. 비트라 공장 단지가 화재로 절반이상이 불타 없어져 그곳에 소방서를 만들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비트라 캠퍼스를 재건할 목적으로 비트라는 프랭크 게리, 알바로 시자와 같은 대형 건축가들에게 건축을 할당했고, 그에 비해 인지도가 낮았던 자하 하디드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지만, 소방서를 지을 건축부지는 길쭉하고 협소해서 건축하기가 아주 까다로웠다. 하지만, 하디드에게는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건물을 2층으로 공간을 크게 나눈 뒤, 방화문을 중심으로 공간을 작은 단위로 쪼갰다. 공간이 협소해서 1층은 소방차 공간과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라커로 만들고, 2층은 휴게공간이자 집회실로 만들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비트라 소방서를 반듯한 네모로 만든 정적인 형태보다는 건물의 모서리를 뾰족한 예각으로 만든 동적인 형태로 설계했다. 훗날, 사람들은 뾰족하게 생긴 비트라 소방서를 두고 '돌로 된 번개'라고 부를 정도로 동적이었다. 매번 지어지지 못했던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 마침내 비트라 소방서라는 이름을 달고 실제로 지어졌다. 오랜 기다림 끝에 꾹 참아왔던 울분을 한 번에 터뜨린 것 마냥 하디드의 첫 작품인 비트라 소방서는 그녀를 스타 건축가로 만들어준 출세작이 되었다. 그녀의 나이 44세가 되던 해에 그제야 그녀는 페이퍼 아키텍트라는 놀림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김홍철 작가 지면용
김홍철 작가 지면용

비트라 소방서는 너무나 파격적으로 지어졌기에 공간을 사용하기에 많은 무리가 있었다. 구조적으로 너무 불편하고, 공간이 예각으로 만들어져있는데다가 벽체가 뒤틀려있어 어지럽다고 소방대원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다 결국 소방대원들은 비트라 소방서에서 다른 곳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더는 소방서로써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비트라 소방서는 건축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아 이름은 그대로 두고 현재 비트라 의자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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