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고추잠자리가 날고 아릿한 들풀향기에 삽상한 바람이 불면 돌아가신 부모님과 흐릿한 기억 속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기억은 혼재되어 조각처럼 나타난다. 내가 태어나고 몇 년을 보낸 곳이 어딘지 정확히 모른다. 집 뒷마당에 감나무가 있어 아침에 가보면 감꽃과 감이파리들이 떨어져 있었고 감꽃의 달착지근한 향기가 나 그것들을 묶어 목걸이를 하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작은 못이 있었는데 동네 형이나 누나들이 잠자리를 잡아 실에 매어 그것으로 또 잠자리를 잡았다. 햇볕이 따가웠으니 늦가을쯤이었을 것이다.

마을을 떠나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눈이 하얗게 쌓인 한겨울이었다. 온 가족이 이불과 가재도구 같은 것을 이고지고, 시리고 추운 눈길을 걷고 걸어 청주시내로 왔다. 내 나이 대여섯이었을 게다. 형들과 나이차가 있어 큰 형은 스물 안팎, 작은 형은 열대여섯 되었을 테니 사정을 알았겠지만 누구도 구체적으로 얘기한 것 같지 않다. 더 이상 그 마을에 살 처지가 못 되어 빚잔치를 하고 떠나 온 것으로 짐작만 한다.

우리가 그 때 정착한 곳이 마을 뒷산의 꼭대기 집이었다. 위로는 절뿐이었고 아래로 몇 집이 있었다. 아버지는 여러 일들을 하셨다. 마을에 논일이 있으면 가셨고 우렁이 같은 것을 잡아다 주곤 하셨다. 구슬을 만들기도 하셨다. 시장에서 닭을 사고팔기도 해서 아버지를 따라 하루 종일을 장에서 보내며 약장수들이 보여주는 신기한 것들도 보았다. 늦게야 알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했고 부모님은 힘겨우셨을 게다.

외딴집이었고 길로부터 돌아앉아 있어 밤이면 마을 어른들이 우리 집에 자주 모였다. 그 힘든 시절 시간을 보내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게다. 모이면 자연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그날 있었던 일들을 풀어놓았다. 절의 젊은 스님이 어디 가서 무엇을 해 얼마를 벌었다는 것이 단연 흥미로웠다. 그래도 긴 세월을 함께 했던 이들이라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그 분이라고해서 매번 계시가 있고 족집게였을까. 얼렁뚱땅 넘긴 이야기들이 웃음을 자아냈다.

가족 모두가 어디를 가곤 했는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혼자인 때가 많았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혼자 있어야 했다. 때로 내가 등잔불을 켜는 날도 있었다. 혼자 놀기는 힘들지 않았다. 제일 쉬운 것은 구슬치기였다. 혼자 하는 구슬치기는 따지도 잃지도 않아서 마음 편했다. 그러다 지루하면 낮 시간 내내 방송하는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곤 했었다. 오후 다섯 시부터 어린이를 위한 방송을 해서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우리 집 마당 양 쪽으로 비스듬한 높이에 작은 나물 밭이 있어서 장다리와 배추꽃, 호박꽃과 찔레 같은 것들을 철따라 볼 수 있었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돌이켜 보면 그 때의 가난이 어른들에게는 고통이었지만 내게는 자연을 경험하고 낮에는 외로움을, 밤에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접하는 조기교육의 시기였다. 때로 무능해보였던 아버지, 자주 아버지와 다투고 눈물짓던 어머니, 모두 힘겨운 시절이었다. 그래도 한 방에 모여 잠자고 티격태격하고, 나는 막내라는 이유로 사랑을 가득 받았던 그립고 아련한 유년이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