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1일은 경찰의 날이다. 75년의 역사를 가졌지만 지금의 모습은 여러 위기와 함께 시대의 격랑에 휩쓸린 듯 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라는 중차대한 과업을 앞뒀지만 전망은 안갯속이다. 현재의 상황도 걸림돌 투성이다. 한쪽에서는 공권력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매 맞는 경찰이 적지않으며 각종 위험에 노출돼 아픈 경찰도 늘고 있다. 경찰 내부의 문제도 여전하다. 음주운전을 비롯해 각종 비위에 연루된 경찰관련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그래도 민생치안의 최일선에는 언제나 그들이 있다.

국민 안전의 버팀목이라는 의미로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한때는 '민중의 몽둥이'라고 부를 정도로 권한과 힘의 남용이 비일비재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180도로 바뀌어 경찰의 안전이 위협받을 정도다. 공무집행중에 매 맞는 등 피습을 당하는 경찰이 해마다 500여명이나 된다. 업무 등으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경찰만 해도 지난해 충청권에서 5천여명 가까이 된다. 이 보다 절반이상 더 많은 소화기 질환 등은 큰 폭으로 늘어났고 뇌·심혈관계 질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같은 외형적인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경찰의 위상과 역할은 당장 발등의 불이다. 향후 경찰조직을 좌우하게 될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가 그 불씨인데 엉뚱한 방향으로 번져 경찰의 발목을 잡을 지경이다. 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을 상호협력 관계로 재정립해 과도한 검찰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있는 사법제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법무부의 시행령에는 경찰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돼 조정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자치경찰제는 사무분장과 지휘·감독 등에서 탁상공론의 흔적만 남았다.

더 큰 문제는 일이 여기까지 진척될 동안 경찰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사권 조정은 당초 협의과정이라도 있었지만 자치경찰제는 아예 의견수렴에서도 배제됐다. 경찰이 해야 할 일들을 남들이 재단하고 결정하니 비현실적이고 불균형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제각각일 수 있는 일선의 의견은 아니더라도 경찰조직의 입장은 들어보고 진행됐어야 하는 일이다. 이처럼 공식적인 창구에서조차 외면 당하고 존재감이 떨어지는게 지금 우리의 경찰이다. 들러리 신세로 안팎의 시련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경찰이 이처럼 곤궁한 처지에 이른데에는 스스로의 잘못도 크다. 윤창호법 시행 한달여만인 지난해 초 잇따랐던 경찰의 음주운전은 최근 코로나 사태속에서 또 반복됐다. 경찰의 날 하루전에는 아동성착취물 'n번방' 사건에 경찰 4명이 적발됐다는 소식도 있었다. 이런 상황은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경찰 스스로의 자성이 꼭 필요함을 말해준다. 사면초가지만 우군은 안보인다. 그럼에도 이들이 짊어진 국민안전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된다. 오늘 경찰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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