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기를 통해 본 과학Ⅱ- 방사광가속기, 평화를 가져오는 과학으로
가속기를 통해 본 과학Ⅱ- 방사광가속기, 평화를 가져오는 과학으로
  • 중부매일
  • 승인 2020.10.2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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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형연구시설기획연구단장
이탈리아 엘레트라 방사광가속기 전경. / http://elettra.trieste.it
이탈리아 엘레트라 방사광가속기 전경. / http://elettra.trieste.it

유럽 전역엔 이미 14기 이상의 대형방사광가속기가 있고, 독일에선 5년 이내에 최신 방사광가속기를 추가로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유럽의 과학연구기반은 항상 선도적이다. 그중 이탈리아의 방사광가속기 이름은 '엘레트라'(Elettr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빛의 여신)로 방사광가속기가 빛공장임을 다시 한번 알려주고 있다.

가속에너지는 2~2.4 GeV 이고 나오는 빛의 크기도 우리나라 포항 방사광가속기보다 뒤쳐진다. 그래서 이탈리아 과학자들은 자국 정부를 설득하는데 성공해서 엘레트라 가속기의 업그레이드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가속기는 아드리아해를 마주한 아름다운 트리에스테 언덕 위에 있고, 방사광가속기 아래쪽엔 세계의 이론물리학자들이 모이는 국제이론물리학센터가 있다. 트리에스테 지역은 사실 17세기부터 유럽 각국이 소유권분쟁을 일으켰던 지역이고 여전히 역사적 소유권이 불분명하다. 인구의 절반 정도만 이탈리아어를 쓰고, 슬로베니아, 독일, 헝가리, 세르비아-크로아티아 등의 언어가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다문화 다국가적 요소가 섞여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걸쳐있던 땅이었지만, 당시 이탈리아는 일찍 연합군에 항복하고 협력하는 덕분에 종전 이후 이 지역을 받았다. 이후 국경분쟁이 일어났지만 1960년대 이탈리아 정부는 이곳을 국제과학연구단지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여기에 대학교와 국제이론물리학센터를 유치하고 방사광가속기까지 구축해서 전세계 과학자들이 찾아와서 함께 연구하는 국제과학도시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이름에 힘입어 국경분쟁은 사라졌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약 40㎞ 떨어진 지역에는 중동지역 유일한 방사광가속기가 2017년에 완공돼 가동을 시작했고, 그 이름은 'SESAME'(Synchrotron-light for Experimental Science and Applications in the Middle East)이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보물창고를 여는 암호가 '열려라 참깨'(Open the Sesame)이듯이, 평화를 열려고 하는 이들의 염원을 담은 SESAME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가속기는 유네스코의 지휘감독보증 하에 유럽국가들의 협조로 중동평화를 염원하면서 구축한 공동연구시설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방사광가속기 실험에 참여하는 국가들이다. 키프러스, 이집트, 이란, 이스라엘, 요르단,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터키의 과학자들이 과학이란 큰 울타리 안에서 같이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빔라인이 4기밖에 없고 전체 성능도 우리의 포항방사광가속기보다 못하지만 이 방사광가속기가 중동평화 유지의 랜드마크이자, 실질적 연구교류를 통해 평화구축에 기여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우리는 충북 청주 오창에 세계 최고 성능의 방사광가속기를 2027년까지 구축하기 위해서 2022년부터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순수한 바람이지만 새 방사광가속기는 북한의 과학기술자들이 대한민국 과학기술인들과 함께 인류평화를 위한 연구를 추구하기 위해서 평화롭게 연구를 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새롭게 지어질 방사광가속기가 남북한 과학자들이 다같이 모여서 연구하는 거대연구시설로 자리매김하고, 과학을 통해서 분단을 극복하고 경색된 남북관계 화합에 길을 터주는 즐거운 상상이 현실이 되길 간절하게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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