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가을이 점점 깊어간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특별한 일이 아니면 집에서 보내기 일쑤였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을 그냥 보낼 수 없다 싶어 집을 나섰다. 사과 한 알과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서.

월악산국립공원 만수계곡으로 향했다. 지난봄에도 다녀왔는데... 만수계곡은 언제 가도 참 좋다. '여고길'이라는 그 길만 걸어도 마음의 때가 뽀득뽀득 씻겨나가는 기분이다.

여고길을 한 바퀴 돌고 야외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휴대폰에 예쁜 풍경을 담았다, 그리고 사과를 껍질 채 와작와작 먹었다. 그제야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다시 차를 타고 충주로 향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멈추고 말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빨간 사과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좀 전에 먹었던 사과향이 혀끝에서 맴돌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 사과는 가을 내내 익어가는 가보다. 추석쯤에도 충주댐 가는 길에 사과가 어찌나 빨갛게 익었는지 멀리서도 반짝였다.

그래서 다 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과 종류가 다 다른가 보다. 지금은 산자락 아래에 있는 과수원의 사과가 익어가고 있다. 사과 잎은 별로 없고 대롱대롱 사과가 매달려 있다. 어떤 나무는 꼭 사과 모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바람이 불면 대롱대롱 움직일 것만 같다.

사과는 멀리서도 예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더 예쁘다. 예전 학창시절에 사과 소묘를 하기도 하고, 국화꽃이 꽂인 꽃병 아래 사과 세 알을 놓고 수채화를 그린 적도 있다.

그림을 그리기 전 사과는 그저 빨간색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정물화를 그리면서 사과를 색칠할 때 어찌나 사과의 색이 오묘하던지. 사과 정물을 꽤나 많이 그렸다. 어떨 때는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그리기도 하고 어떨 때는 시든 사과를 그려보기도 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과를 먹을 때는 껍질 채 먹는다. 씻을 때 뽀득뽀득 소리도 좋거니와 먹을 때 와작와작 소리도 맛있기 때문이다. 껍질 채 안 먹으면 이젠 사과 맛이 제대로 안 나는 것 같이 싱겁다.

가을이면 충주는 어디가나 사과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충주가 참 좋다.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도 사과 과수원이 있었다. 지금은 수몰이 된 목벌이다. 그리고 5학년 여름방학 때 같이 놀던 종광이 삼촌네도 큰 사과 과수원이 있었다. 여름 내내 사과 과수원을 놀이터 삼아 놀다가 재미가 없어지면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했다.

간혹 가뭄이 있을 때면 목벌을 찾곤 한다. 그러면 할아버지 댁과 종광이 삼촌네 사과 과수원 자리가 보인다. 과수원 옆으로는 구불구불 길도 보이고.

흙먼지 폴폴 나는 신작로를 가다가 손 내밀면 닿을 듯한 과수원의 사과. 버스를 타고 가면 유리창으로 훅- 들어 올 것 같았던 사과. 그런 사과의 맴돌던 추억 때문이었을까. 몇 해 전 사과만을 담은 <사과껍질처럼 길게 길게>란 동시집을 펴냈다.

사과에 관한 동시를 쓰면서 참 행복했고, 사과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사과는 가을에 수확하지만 저장성이 좋아 연중 싱싱한 것을 먹을 수 있어 좋다. 우리나라의 사과 재배 역사는 100여년에 불과하지만 품질은 세계 으뜸이라고 한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저녁노을이 번진다. 사과 과수원의 사과가 더 빨개진다. 한참 바라보니 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혼자 보기 아까운 모습이다. 휴대폰에 노을 내리는 사과 과수원을 찰칵, 담아 본다. 사진을 보니 정말 근사하다. 내가 마치 유명한 사진작가 같다.

다른 지역에 사는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낸다. "눈으로 맛있게 꿀꺽!"이란 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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