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회를 치며 우는 닭 울음소리가 우렁차다. 시간은 새벽 4시. 날이 밝으려면 2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신문을 보다 인터넷으로 여행을 즐기다 보면 동창이 밝아온다.

나의 일터인 텃밭과 뜰 가꾸기, 닭 돌보는 일은 하루의 시작이다. 소일거리인 닭 기르는 재미에 폭 빠져 한해를 보냈다. 암닭 두마리가 28마리의 병아리를 쳤다. 어찌나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던지 아낌없는 사랑을 쏟았다. 사료주고 풀 뜯어다 주고 8개월이 되니 알을 낳기 시작했다.

수탉이 여러 마리 다 보니 주도권 싸움으로 온 종일 비명 소리가 그칠 줄 모른다. 닭장의 평화를 위해 토종닭인 수탉 한 마리를 청계와 백봉이 사는 마을로 입양을 보냈다. "이럴 수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 파낸다는 속담이 있다. 억센 척 원주민 예쁜 수탉 두 마리를 쥐 잡듯 한다. 두 마리 수탉이 고개를 구석에 쑤셔박고 엉덩이만 하늘로 치켜들고 기압을 받고 있다.

화가 나서 난 멍멍이가 쓰던 집에 입양 온 놈을 가둬 버렸다. 닭장의 평화는 왔는데 닭들이 활기 없다. 이틀 후 두 마리 수탉을 가두고 내보내 주었더니 의기양양하여 암컷들을 독차지하고 군주처럼 늠름하다.

닭의 종류가 7천616종이나 된단다. 우리 집만 봐도 울긋불긋한 토종닭과 수수 닭, 눈만 까만 백봉, 여성다움이 찰찰 넘치는 화이트 실키와 밥 화이트 퀼은 선비를 닮았다. 그런가 하면 번쩍번쩍 왕포를 걸친 듯 우아한 벼슬에 눈가에 밝은 보라색 샤도우를 한 눈매고운 수탉과 검은색의 암탉도 있다.

오리지날 청계는 보랏빛 깃털을 가졌다. 알도 푸른색의 알을 낳는다. 다문화 가정을 이룬 닭들은 개척 정신과 감투성이 높다. 심술궂은 주인의 장난에 기 죽어지내는 수탉 두 마리가 마치 옥중의 죄인처럼 보였다.

젊은 날 이 넓은 집을 나 몰라라 하고 사업 한다고 살림과 애들 뒷바라지도 대충대충하며 세월을 엮었다. 이렇게 온종일 엉덩이 붙일 새 없이 쓸고 닦고 풀 뽑다보면 하루해가 짧은데….

철부지 부부는 계획성 없이 용감하게 아이를 셋을 낳았다. 무엇에 쫓기듯 가르치고 먹이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순간순간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후회 없이 살아온 날들이었다.

가을바람에 낙엽이 떨어져 뒹굴고 감나무에 연등을 단 듯 주홍색 불빛이 곱다. 서리가 내리니 헛게나무와 호두나무는 가을 편지를 보내며 참선을 준비 중이다.

앞마당의 햇살이 곱다. 울타리에 매달린 호박을 따서 고지를 켜고 애고추를 가루 묻혀 쪄 말린다. 하나하나 겨우살이 준비 중이다. 김장배추와 무, 골파가 쑥쑥 자라는 것을 지켜보며 또 한해가 저물어감을 안타까워한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옆집 형님이 무청 잎을 한바구니 닭 주라며 들고 오셨다. 집에서 기르는 닭은 음식물 쓰레기 청소부다. 덕분에 이웃들과 돈독한 정을 나누고 있다. 대문간에 탁자와 의자를 놓고 차를 끓이니 소통의 장이 되었다.

천고마비의 계절. 알록달록 핀 국향에 취해 하늘을 올려다보니 쪽빛 하늘에 새털구름이 그림을 그린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