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안창호 충북스타트업협회 의장

"희망고문으로부터 마침표를 찍습니다."

최근 여행업계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당초 업계는 올 연말이면 '코로나 리스크'가 해소될 것 전망했다.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으로 버티면,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내심 반도체 시장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힘든 시기를 견디고, 최후까지 살아남은 기업이 '위너 테이크 올(Winner take all)', 승자독식의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여행업계는 대규모 감원에 이어 줄 폐업이 빗발치고 있다. 최근 한국여행업협회(KATA)는 3월 이후 휴·폐업한 여행사가 730여 개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얼마 전 '재기 스타트업' 상담을 위해 만난 A씨는 "이제야 실패를 인정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2007년 금융위기 당시 큰 고통이 있었으나, 다시 창업해 지난 10여 년 동안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 그도 코로나 폭풍을 비켜서지 못했다.

"처음에는 인정하지 못했어요.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너무나도 억울했어요. 그래서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어요."

안타깝게도 A씨가 실패를 인정하게 된 것은 모든 것이 무너진 이후였다. 상처가 나면 연고를 바르고 아물지 않으면, 아물 때까지 바르면 된다. 하지만 그는 과거 금융위기처럼 다시 고통의 시간이 두려웠다. 그래서 상처가 아문 자리를 다시 후벼 파는 것을 반복한 나머지 결국 피투성이가 되고,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나서야 실패를 인정하게 됐다. 냉정히 말하면 A씨는 '실패한 것이 아니고, 실패를 만든 것'이었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A씨에게 필자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산업의 생애주기가 어떻고, 사업모델의 타당성을 진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가장 멀리까지 가본 곳은 어디였어요?"

"제가 다녀온 곳은 부산도 아니고 미국도 아닌 '한강 다리 위'였어요."

당시 필자는 예상치 못한 외부환경으로 현금흐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다음 주면 급여를 줘야 하는데, 통장잔고는 500만 원도 없었다. 급하게 팔려고 내놓은 상가도 팔리지 않아서 모든 것이 공포 그 자체였다. 얼마 지나서 않아서 직원들이 한 명, 두 명 그만 두기 시작했다. 얄팍한 마음에 내심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 뒤에 모든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스핀오프(spin off, 기업분리)했던 사업을 포기했다. 오너의 무능력으로 실패했음을 깨끗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다시 시작했다. 모든 것이 고통스럽지만 한가롭게 아픔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

시큰둥한 A씨의 반응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떠올랐다. 대공항 당시 케인스는 수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구매하고 싶어도 지불할 능력, 즉 유효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주류 경제학자들도 이를 모르진 않았다. 다만 그들은 수요가 부족하면 당연히 가격이 하락할 것이고,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가 늘어서 경제가 다시 균형 잡힐 것으로 믿었다. 그런 그들에게 케인스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 언젠가는 회복되겠지요. 하지만 그 언젠가가 오기 전에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최근 제주 '4.3 북촌길'을 걷다가 '기억 투쟁'이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기억 투쟁'을 해야만 하는 역사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처럼, 반대로 '희망고문의 마침표를 찍었다면, 지금당장 행복을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 들판의 거친 풀꽃이 정원의 화려한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처럼 타인의 성공에 더 이상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지 않아도 된다. '성공이 아닌 성장을 위해 투쟁'하면 그만이다.

자연수명이 약 40년으로 알려진 조류 '솔개'는 최고 약 70년까지 산다. 하지만 40살이 될 즈음 솔개는 매우 중요한 결심을 해야만 한다. 이미 노화한 발톱은 사냥감을 잡아채기엔 무뎌졌고, 부리도 길게 자라서 구부러졌으며, 깃털은 더욱 두껍게 돼 높이 날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때, 솔개에게는 두 가지 선택만 남았다. '그대로 죽을 날만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남은 절반의 삶을 위해 '고통을 감당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안창호 충북스타트업협회 의장
안창호 충북스타트업협회 의장

고통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정상으로 올라가 둥지를 짓고,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만든다. 그러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난다. 그 후 새로운 부리로 이제는 발톱을 뽑아낸다. 그러면 또다시 새로운 발톱이 돋아난다. 이젠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마침내 새 깃털이 돋아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30년을 살게 된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요청한다. 문제는 다양하지만, 솔루션은 언제나 같다. 다시 비상(飛上)하길! 그리고 성공이 아닌 성장을 위해서 힘차게 날아오르길!

"코로나 19로 지친 당신! 이제는 행복을 위해 투쟁하라!"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