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우리네 삶에는 쉼없이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비가 내리고 눈이 오고 봄이 오고 또 겨울이 간다. 지나 온 날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의 길목에 들어서야 인생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듯 하다, 전통의 숨결이 살아있는 한옥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흙냄새 나무냄새가 주는 편안함이 엄마의 자궁처럼 따듯하고 아늑해 오랜만에 곤한 잠을 잤다.
우리 집 딸이 다른 집안의 며느리가 되고, 그 집 아들이 우리 집 백년손님이 되는 자녀를 나눠가진 사돈지간. 두 가족이 만나 사돈이란 이름으로 맺어진 또 하나의 가족. 어렵다면 어렵고 가깝다면 아주 가까운 사이인 예비사돈과 가족여행을 함께 했다. 풍류와 멋이 머물러 있는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1박2일을 보냈다.
가까이에 있는 향수의 시인 정지용 문학관과 육영수 생가, 향교를 둘러보는 여유로운 한적함이 좋았다. 활짝 핀 연꽃의 화려함과 어울리는 한옥의 정취는 더더욱 매력적이다. 햇빛을 바람을 끌어들인 자연풍광과 따듯한 온돌, 흙과 나무냄새는 어머니의 젖가슴같이 넉넉하고 포근했다. 전통문화 체험을 위한 널뛰기, 그네, 투호, 윷놀이, 곤장대 형틀…. 옛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익혀 조상의 지혜를 배우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가르침이 있는 곳이다.
한 생애를 살다 세상을 떠나면 육체는 재가 되어 원래 왔던 흙으로 다시 돌아간다. 세상을 다스리고 호령하던 만물의 영장이 결국 한 줌 흙이 되는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이기도하다. 사람은 흙으로 빚어진 존재라고 성경(Bible)은 말한다. 인간(human)이라는 말은 땅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라틴어 후무스(humus)에서 만들어졌다. 흙에서 나온 먹거리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결코 우연이 아닌 흙, 땅, 사람의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흙집, 황토방, 흙담, 토기, 항아리 등 흙과 더불어 자연친화적인 것들과 살고 싶은 것이 인간 본연의 마음인걸까.
심어야만 열매를 거둘 수 있는 흙은 정직하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곳에서 열매를 맺을 수 없듯 반드시 씨를 뿌려야만 한다. 그래야 기쁨으로 단을 거들 수 있다, 이 세상 절대로 공짜는 없다는 것을 아이들 어릴 때부터 가훈처럼 말하고 또 말했다. 앞마당의 조그마한 텃밭농사를 통해서도 땀 흘린 댓가의 결실에 대해 삶으로 가르쳤다.
기름진 땅 맑은 물이 흐르는 향수의 고장. 그 곳에 가면 흙냄새, 나무향기 솔솔 나는 한옥과 전통문화가 우리를 기다린다. 삼십 여 년 전 아이들을 키우던 제 2의 고향 같은 곳. 마음이 따듯해지는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큰 바위처럼 여전히 그 곳을 지키고 있다. 게다가 전통의 향기 솔솔 흐르는 하늬녘. 새녘 방에서 사돈과 함께 추억 하나를 만들었으니 더더욱 기억에 남을 곳이다.
전통문화와 풍류가 있는 고즈넉한 한옥체험. 참새방앗간처럼 들러 차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사람 냄새 흙냄새 바람향기 가득한 그 곳이 나를 부르면 주저없이 달려 갈 것이다. 님이 부르시면 달려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