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인간은 본능적으로 위험 앞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인간의 내면에 공포심리가 작용하는 순간 인간은 매우 취약한 존재가 된다. 건강과 생명이 위태롭다는데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이런 이유로 특정 정치적 목적에 의해 위험이 강조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공포전략'을 쓴 것도 그런 경우다. 지지율이 뒤처진 상황에서 자극적인 말을 앞세워 막판 추격을 시도했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북한의 위협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북한도 마찬가지, 내부 상황이 어려울수록 남한을 위험요소로 끌어들였다.

불순한 목적의 위험 강조는 민주주의를 침식시킨다. 위험의 강조를 통해 상황반전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비판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호재로 이용할 수 있다. 인권침해나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안전이란 이름으로 합리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은 개인과 집단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무소불휘의 무기로 기능한다.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다는 국가들은 대부분 서구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이 그렇다. 반면 미국과 유럽은 방역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왜 이들 국가들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을까.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감수성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 개연성이 크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만든 결과다.

전 세계가 똑같이 코로나19를 겪는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시위와 폭동이 발생했다. 아무리 코로나가 위험하다고 해도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아시아엔' 편집장의 기고문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전염병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어렵게 쟁취한 자유가 퇴보할까 우려하는 시선이 있다. 누군가가 정부의 방역정책을 비판하려면 큰 용기를 내야한다. 우리는 그 어떤 상황이더라도 정부의 정책과 방침에 대해 논의하고 지적할 권리가 있다."

독일 시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에서는 이 집회의 성격을 극우파 성향의 시위로 이해했다. 시위자들이 들고 있는 깃발을 보면 극우세력의 구호와 제국주의 시대의 국기가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집회의 성격을 극우성향의 시위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극우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았을 뿐이다."

바로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들 시위의 핵심은 공공의 목적으로 개인생활을 통제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의 차이다. 위험 요소와 특정 정치적 목적이 결합되면 민주주의의 위협을 불러온다. 지금까지 그랬듯, 목숨보다 귀한 것이 없다는 논리 앞에 누구도 말할 수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토를 달면 공공의 적이 되고 만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위험이 과장된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관련 전문가들마저 특정 목적의 정치세력과 하나가 될 경우 민주주의의 침식은 더욱 가속화된다. 그래서일까. 프랑스에서는 '안티 마스크'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사회당의 장조레스 재단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평균연령 50세, 36%는 경영 전문직에 종사한다. 이중 90%는 코로나가 크게 위험하지 않음에도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공포를 과도하게 부풀린다고 생각한다. 의사들까지 가담하고 있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플랭클린은 "안전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는 사람들은 '안전'도 '자유'도 모두 얻지 못한다"고 했다. 자유는 없지만 가장 안전한 곳이 감옥이란 말도 같은 맥락이다. 위험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 민주주의는 침식된다. 그 과장된 위험이 사회를 감옥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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