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멀리 갈 것 없다. 집에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세 학교가 모여 있다. 학교에는 꽤 많은 나무들이 담장을 이루듯 심기고 세월이 흐르며 거목들이 되어간다.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한편은 상록수가 주를 이루니 늦봄의 표정 같고, 다른 편은 활엽수들이 식재되어 절정의 단풍철 풍경을 보이고 있다.

담을 따라 가다가 만나는 버스길 너머는 장구봉으로 오르는 숲길이 이어진다. 그 모퉁이에서 몸을 틀면 주황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햇살에 익은 것 같은 단풍들이 내 눈길을 잡아챈다. 온통 불이 붙은 듯 붉게 물든 나무에 눈이 멎는다. 이름 그대로 단풍나무인가 보다. 햇살처럼 빛나는 금빛 잎들도 있다. 으뜸 금빛이야 은행잎이지만 버금쯤 가는 화려함으로 즐거움을 주며 늦은 가을날 황홀한 마무리를 하는 중이다.

잎들은 한 해를 분주하게 살았다. 눈부신 신록으로 세상을 물들이며 봄을 지냈고 강하고 질긴 생명의 푸름으로 폭우와 태풍을 이겨내며 열매를 지켜내던 여름도 갔다. 햇살 순하고 바람결 부드러운 가을에는 잎들도 강인함을 유지할 수 없다. 서서히 몸체와의 이음매에 힘 빠지고 공급되던 영양 줄어들며 낯선 색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열매를 키워내느라 드러내지 못했던 자신들 본래의 색이다.

열매가 노랗고 빨갛게 익어 달고 고소한 맛 드는 걸 보면 나뭇잎 바탕색은 황적색인지 모른다. 단풍 화려한 나무들은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받고 떨어진 잎조차 감성 여린 이들 마음에 울림을 준다. 그들만 길가에 있는 것은 아니다. 되레 많은 나뭇잎들은 우중충하고 데데해서 볼만하지도, 즐거움을 주지도 못한다. 그 잎에도 한 해의 흔적이 있고 애환의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건만 빛나는 모습은 아니다. 노년을 맞은 힘겨운 이들이 떠오른다. 쓸쓸하고 외로운 모습들이다. 공평하지 못하다. 무엇을 해도 잘하는 팔방미인들은 노년마저도 화려하다.

평생을 어렵고 힘들게 살아온 이들의 말년이 어떠할까? 평생 육체를 혹사한 흔적은 여러 질병으로 몸에 남고, 노년 준비도 제대로 못했을 테니, 힘 빠지고 경제적 여력 없는 나날이 순탄하기 어렵다. 누구 인생인들 귀하지 않으랴. 그런대로 힘 있던 때에는 자리 잡고 열매 맺어 키워내느라 제 색깔 내지 못하고 그저 푸르게만 살았다.

빨갛고 노랗지 않으면 어떤가. 화려하지 않음은 스스로의 인식이 아니다. 행인들의 눈만 의식할 일도 아니고 그 눈이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않는다. 평생 못다 펼친 자신의 색을 드러내는 게다. 그래야 후련하고,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으리라. 가슴에서 소리치는 열정을 풀어내고 햇볕 따사로운 어느 좋은 날, 생명의 본향으로 마지막 비행 떠나는 게 무릇 살아 있는 것들의 여정이다.

빨강과 노랑의 볼만한 노년을 기대하지 않는다. 길가에 물든 나뭇잎처럼 오직 내게 남은 열정 모아 내 색깔로 내 몸을 물들이고 싶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고운 햇살 따스하게 내릴 때, 나를 불러 당신의 나라로 들이는 그 날까지 내 색으로, 남은 열정 다해 몸과 마음을 물들이는 일이 학교 앞 가로수 단풍잎들을 보며 다짐하는 내가 앞으로 해나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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