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과 기회
이슬과 기회
  • 중부매일
  • 승인 2020.11.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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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눈]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때는 중국 한(漢) 나라 무제(武帝) 기원전 127년. 한나라와 흉노의 싸움이 잠시 중단되고 평화 무드가 찾아왔다. 흉노의 선우(單于, 왕) 차제후는 억류했던 한나라 사신을 돌려보내기로 했다. 이는 예측할 수 없는 한나라 공격이 두려워 선제적으로 취한 조치다. 한 무제는 중랑장(황궁 문 수위를 관할하는 관직)인 소무를 보내 억류 사신들을 송환하도록 했다. 흉노 땅을 밟은 소무는 모반에 연루되어 억류됐다. 하지만 모함에 의한 모반이기 때문에 흉노에 항복하지 않았다. 차제후는 소무의 항복을 강요했지만 허사였다. 소무가 유배되어 혹독한 삶을 이어가던 차 한나라 군사 이릉(흉노와 전쟁에서 항복할 수 없었음을 변호하다 거세당하고 사기를 쓴 사마천의 지인)이 중과부적으로 흉노에 항복했다. 차제후는 이릉에게 소무의 항복을 설득하라고 지시했다.

"그대는 한나라로 돌아갈 수 없소. 고초의 삶으로 한나라 조정에 신의를 지킨다 한들 조정에서 알 수 있겠소. 전장에 나설 때 그대 부모가 돌아가시고 아내는 재가하고 두 여동생과 세 명의 자식들만 살고 있다고 들었소. 벌써 10년이 지났으니 그들의 생사조차 모르오. 인생은 마치 새벽에 스러지는 이슬과 같은데 이렇게 오랜 시간 고생을 자초하고 있단 말이오? 절조를 지킨들 내일의 목숨을 보장받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소. 흉노에 투항해 새 삶을 찾는 것이 옳지 않소."

"우리 삼 형제는 황제(무제)의 은덕으로 장군의 반열에 올랐고 작위는 통후(通侯)까지 받았소. 황제와 조정을 위해 목숨을 바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소. 도끼와 톱으로 목이 잘리거나 가마솥에 삶기는 극형을 받아도 즐거운 마음으로 감내하겠소." 이릉의 보고를 받고 소무의 충정에 감복한 차제후는 소무를 한나라에 보내기로 했다. 소무의 19년 동안 억류가 끝났다(漢書 蘇武傳/班古).

이릉이 말한 "인생은 마치 새벽에 스러지는 이슬과 같은데"가 바로 '인생초로(人生草露)'다. 이슬은 햇볕을 받으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 짧은 이슬에 인생을 비유했다. '인생은 달리는 흰 망아지의 모습을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다(인생여백구과극, 人生如白駒過隙)'는 삼국시대 촉나라 장군 강유의 말 역시 인생을 이슬 같은 순간에 비유한 것이다. 이처럼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인생인데 왜 죽음과 고통을 자초하며 인생을 허비하느냐는 이릉이 소무에 대한 고언이다. 흉노에 항복하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편한 삶을 누리라는 권유이기도 하지만 인생은 허무하니 스스로 질곡에 들지 말라는 충고다. 한시라도 스스로 알차게 살라는 명령이다.

순간을 활용해 인생의 풍부함과 평화를 보여준 사람이 있다. 중국 동진 시대 전원시인 도연명이다. 그는 팽택 현령 때 '쌀 다섯 말 때문에 (시찰 관리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불위오두미절요, 不爲五斗米折腰)란 일화를 남기며 관직을 버리고 귀향해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동양적 이상향을 그린 '도화원기(桃花源記)'다. 이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진(晉) 나라 때 무릉(武陵)에 사는 어부가 있었다. 고기잡이 몰두로 길을 잃었다.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숲속의 물길을 따라갔다가 500여 년 전 진(秦) 나라의 난리를 피해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이르렀다. 그들은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는 물론 한나라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왔다. 어부는 다시 그 마을, 이른바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찾았으나 그러하지 못했다.'

도연명은 이 불후의 명작을 쓸 때 풀잎에 맺힌 이슬을 사용하곤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국화잎에 맺힌 이슬을 손수 받아와 먹을 갈아 먹물을 만들었다. 이 먹물에 붓을 찍어 글을 썼다. '도화원기'의 내용이 평화롭고 영원하고 알찬 삶, 이상향을 그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슬의 허무를 충만으로, 이슬의 순간을 영원으로 승화한 셈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그리스 시대 제우스의 막내아들 카이로스(Kairos)가 있었다. 앞머리 털은 길지만, 뒷머리 털은 없고 다리와 어깨에 날개가 달린 미소년이다. 앞머리 털을 순식간에 잡지 못하면 카이로스를 놓쳐버리고 만다. '호기(好機)는 빨리 포착하지 않으면 포획할 수 없음을 시사해 카이로스를 '기회의 신'이라 부른다, 앞머리 털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다. 모두 기회다. 인생초로. 인생이 아무리 찰나(刹那, 1/75초)라 하지만 그냥 놓쳐 버릴 수 없다. '번갯불에도 콩 볶아 먹는다'는 속담을 새겨볼 만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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