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건식의 무예이야기 - 조선의 병법, '무경칠서(武經七書)'
허건식의 무예이야기 - 조선의 병법, '무경칠서(武經七書)'
  • 중부매일
  • 승인 2020.11.1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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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칠서 주해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무경칠서 주해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시대 무관들은 어떤 공부를 하였을까? 그들은 활을 잘 쏘고 창검을 잘 다루며 말을 잘 타는 것만으로 무관의 지위를 갖고 있었을까? 아니다. 그들은 문무(文武)를 겸비하였다. 11세기 중반 중국 송나라에서 편찬되어 고려에 전해진 '무경칠서(武經七書)'는 동양의 병서(兵書)를 대표하는 책이다. 조선의 많은 국왕과 문무 관료들은 '무경칠서'에 기재된 전략과 전술이 지략을 갖춘 무관을 양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의 문과(文科)에서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서경, 주역의 '사서삼경'이 주요 교과서였다면, 무과(武科)에서는 '무경칠서'인 육도, 삼략, 손자, 오자, 사마법, 이위공문대, 울료자의 7가지의 병서가 병법의 교과서였다.


 

임진왜란이후 병학 연구과목


'무경칠서'는 조선 시대에 무과(武科)가 설치되면서 관심이 높아져 훌륭한 무전(武典)으로 채택되었다. 1392년 태조가 즉위하면서 내린 교지에는 문무(文武) 두 과거는 한 가지만 취하고 한 가지는 버릴 수 없으니 중앙에는 국학(國學)과 지방에는 향교(鄕校)에 생도(生徒)를 더 두고 강학(講學)을 힘쓰게 하여 인재를 양육하게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이 내용 중에 "강무(講武)하는 법은 주장한 훈련관(訓鍊觀)에서 때때로 '무경칠서' 와 활쏘기 기술을 강습시켜, 그 통달한 경서의 많고 적은 것과 기술의 정하고 거친 것으로 그 높고 낮은 등급을 정하여, 입격(入格)한 사람 33명을 출신패(出身牌)를 주고, 명단을 병조(兵曹)로 보내어 탁용(擢用)에 대비할 것"이라고 하였다. 실제 첫 무과가 시행된 1393년 '무경칠서'와 마보(馬步), 그리고 무예(武藝)에 정통하고 익숙한 자는 1등으로 삼았다.

이 책은 과거(科擧) 무과의 두 고시과목인 강서(講書)와 무예중 강서의 주요한 부분으로 차지하면서, 이 책에 주석을 달아 '무경칠서주해(武經七書註解)'를 편찬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편찬되었어도 당시 무인들의 학습을 위한 수준 높은 병학(兵學)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명나라 초기 류인(劉寅)이 편찬한 '무경칠서직해(武經七書直解)'가 15세기 말 조선에 도입되면서부터 병학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16세기 임진왜란을 계기로 새로운 전술의 정립이 필요해지게 되면서 중국의 여러 병서들이 도입되었고, '무경칠서직해(武經七書直解)'를 다시 간행하였다. 그 후 17세기 중반 병자호란의 패배로 인해 청나라의 침입을 대비하고 북벌 추진의 일환으로 병학을 고민하던중 '무경칠서'는 18세기에 이르러 병학의 관점에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러한 관심은 18세기 후반 정조가 '무경칠서'의 여러 주석본을 참고하여 새로운 '무경칠서'를 만들어 새로운 전술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정조 서거이후 편찬작업이 중단되었고, 그의 성과물의 일부는 19세기 간행된 병서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한국 무학(武學) 성립의 근원

이처럼 병법은 무과시험의 중요한 이론시험과목이었다. 병법은 무예의 확장된 의미로 조선에서 상당히 발전된 학문의 한 분야다. 그 이유는 병법을 단순히 창과 칼을 다루거나 진법 등을 익히는 군사적인 부분이 아니라, 첨단 무기 시스템이 발전된 현대에서도 이 방법은 유효성이 있다는 것이 '무경칠서'의 매력이다.

'무경칠서'의 진법은 극히 일부분에 해당한다. 실제 병법은 인의(人義)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지혜를 담고 있다. 그러나 병법은 현시대에 충분히 재조명되어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음에도 군사적인 방법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무경칠서'와 각종 병서는 조선시대 무학(武學)의 기본과목이었다. 인간 사회에서 형성된 치국(治國), 병의 운용, 무장의 자질, 전쟁의 전략과 전술 등을 학문으로 하는 무관들의 필독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경칠서'와 무예는 무관이 무과를 비롯한 평상시의 학습 과목이었다. 이 때문에 조선의 무학은 무비(武備)와 전쟁의 전략과 전술을 위한 무과의 핵심제도를 구축하여 관학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허건식 체육학 박사, WMC기획경영부 부장
허건식 체육학 박사, WMC기획경영부 부장

최근 이러한 무학은 병서를 통해 무예 사상을 전승하는 방법으로 연구되고 있다. 중국의 병서가 직, 간접적으로 유입되어 활용되었지만, 이를 활용하고 재정리해 무학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무학의 이론은 인간 삶의 지혜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사회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현대 무예 사상의 근원을 형성하고 있다. 즉 무학은 국가체계를 유지하고, 이민족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중요한 학문 분야였기 때문이다. 현대 체육학이나 무예학에서도 한국의 신체문화를 대표하는 학문으로 조선시대 무학이 부각되고 있는 이유기이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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