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재원 경제부장

한 9년 전 일이었을 것이다. 충북도청 공무원들이 주변 식당에서 공짜로 먹은 '외상 밥' 때문에 식당 주인이 가게 문을 닫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 식당이 도청 실·과와 외상 거래를 했는데 대다수가 수 백만원에 이르는 외상값을 제대로 갚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족이나 외부 손님을 데려와 밥을 먹고 마치 부서 회식을 한 것처럼 외상장부에 기록한 행태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외상값에 허덕인 식당 주인은 결국 도청에 밥값을 달라고 사정했으나 매번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 일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도청 직원들의 외상거래는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는 곧 전국적으로 확산돼 정부 감사까지 진행되기도 했다.

수 백만원에 달했다는 외상값의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외상거래는 사실이었다.

도청 공무원들의 '흑역사'다.

하지만 외상 거래를 담은 '치부책'은 관광서 주변 식당에 현재도 여전히 있다.

관공서 입장에선 회계 편의상 외상은 불가피하다고 한다. 식당도 외상 거래가 아니면 관공서를 상대로 장사하기 어렵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외상거래를 탓하는 게 아니다. 제때, 정확히 외상값을 갚는다면 사실상 문제 될 게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다.

바이러스 광풍으로 요식업계는 죽을 맛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들다는 심정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이제 기지개 좀 켜나 했더니 수도권 감염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이 여파로 공무원에겐 공공부문 2단계 방역 수준이 적용됐다. 사적 소임이나 행사, 회식 등을 모두 취소하고 자중하라는 정부 방침이다. 이를 어겨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문책하겠다고 경고했다.

소비층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이제 전원 집으로 향할 것이고, 요식업계는 또다시 암울한 시기를 겪게 될 것이다.

이런 시기 외상장부는 관공서 주변 식당을 더욱 힘들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다. 외상이 사라진다면 더없이 좋겠으나 묵시적 관행을 하루아침에 없애면 부작용도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결제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어떠할까. 분기별 갚았다면 이를 매월로 단축하고, 월 단위는 주 단위로 당겨 조금 더 빨리 대가를 받게 해주는 방법이 괜찮아 보인다.

박재원 경제부장
박재원 경제부장

아니면 선 결제로 먼저 밥값을 준 뒤 해당 식당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회계규칙상 선 결제는 불가하다는 '안 된다' 마인드를 고집하지 말고 적극행정을 구사해 보도록 하자.

힘든 시기, 더 고통스러워하는 계층이 나올 수 있다. 그것이 외상장부일 수 있다. 외상장부가 누군가의 고통이라면 당사자에겐 '치부(恥部)책'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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