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송남근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1956년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이래 세탁기와 냉장고와 같은, 지금 기준으로는 첨단이랄 것도 없는 가전제품에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이 붙고는 하였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2016년 당시 세계 바둑 랭킹 2위였던 이세돌과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세돌의 완승을 점쳤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알파고가 3대 1로 완승을 거두었다. 1997년 5월 IBM의 'DeepBlue'라는 슈퍼컴퓨터가 당시 세계 체스 챔피언이었던 카스파로프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컴퓨터가 인간을 상대로 바둑에서 이기려면 최소 100년은 지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체스는 경우의 수가 1천만 가지 정도로 추정되는 반면, 바둑은 경우의 수가 10의 170승으로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다고 알려져 있다. 경우의 수가 사실상 무한대에 가까운 까닭에 머신 러닝이라 불리는 과정을 통해 기술을 습득할 수밖에 없는 인공지능이 바둑에서만큼은 인간을 능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해 왔었다.

고양이와 개를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던 인공지능이 어떻게 이리도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일까? 그 배경에는 빅데이터가 있다. 그동안 인공지능은 인간이 지시하거나 가르쳐 준 것 혹은 계산을 통해 산출된 결과만을 출력하는 일종의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이 주어진 데이터를 이용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데이터 처리장치의 획기적인 기술향상과 더불어 스마트폰이 보급됨에 따라 사용자가 직접 만들어내는 사진 동영상 등 UCC는 물론 e-메일과 구글과 같은 포털사이트 검색 등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생성된 모든 콘텐츠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빅데이터'라고 부른다. 과거의 기술로는 도저히 처리할 수 없었던 엄청난 양, 처리속도, 다양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빅데이터는 마케팅 수단이 되어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검색한 내용 혹은 관심을 가진 사항들이 나로 하여 물건을 더 많이 구매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농업 부문에서 빅데이터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스마트팜을 통해서 작물의 최적 생육조건을 찾아서 자동으로 물과 비료를 주고 병해충을 예방하고 있으며, 해외여행을 가서 전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스마트폰만 있으면 시설하우스의 조작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빅데이터 활용의 시작에 불과하다. 2014년 설립된 '엔씽'이라는 회사는 지난 1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전자제품박람회에서 농업 분야의 첫 번째 수상 기록이다. 컨테이너 박스를 겹겹이 쌓아 모듈형으로 만들어진 식물공장에서 외부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최대 연 13회까지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대개 다른 식물공장들이 창고를 개조하여 이동이 어려운 데 반해 원하는 대로 위치를 변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엔씽이 농업회사라기보다 인터넷 기반의 IT 회사인 이유는 자체 개발한 IoT 기술을 기반으로 최상의 맛을 지닌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온도, 습도, 빛 등 모든 것을 결정하는 소프트웨어가 탑재되었기 때문이다. 2015년 구글 엔지니어들이 설립하여 2018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아이언옥스'라는 회사는 로봇이 파종에서 수확까지 최상의 품질의 작물을 키워낸다. 수경재배를 통해 땅에서 생산한 것보다 90%의 물을 절약하여 최대 30배 더 수확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외에도 '타라니스'라는 드론 회사는 고화질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을 이용하여 농장을 모니터링한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 기계학습 알고리듬은 인간이 문제를 발견하기 전에 병해충 등을 식별하도록 자체적으로 훈련을 계속하는데 이 또한 빅데이터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지하철역에서 직접 생산하고 자판기로 판매하는 농산물을 사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후변화와 소비자의 식품 소비 성향의 변화는 이 땅의 안전한 먹거리 생산의 안정성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 농업의 경쟁 상대가 값싼 외국농산물에 그치지 않는다. 농장이 아닌 공장에서 공산품처럼 자동으로 생산되고 있는 균일한 품질의 농산물이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의 발달과 환경의 변화를 두려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오히려 빅데이터를 잘만 활용한다면 농업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슈퍼컴퓨터로도 예측이 쉽지 않은 기상예보에 관하여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이 기상이변을 상당한 정도까지 예측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의 알파웨더 프로젝트는 기상예보관의 예측을 90%까지 보정해 주는데 2024년까지 강수 유무 확률을 예보관 대비 9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함유근 전남대 해양학과 교수는 AI 딥러닝을 통해 엘니뇨를 18개월 전에 예측하는 솔루션을 개발해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 이제 빅데이터를 활용해 보다 정확한 기상정보로 파종과 수확 등 재배 적기는 물론 지역별 생육환경을 고려한 최적 작물 선정도 가능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소비자의 식료품 소비성향을 파악하는 일도 빅데이터가 한 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농작물의 특성상 단기간의 품목을 교체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원하는 농산물을 제 때에 생산하는 시스템은 빅데이터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별도로 시장조사를 하지 않고도 보다 정확한 소비자의 성향을 분석할 수 있다면 농산물 수급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빅데이터 기반 농업부문 플랫폼이다. 이러한 플랫폼이 구축되어 농업인들이 농작물 재배계획 등 데이터를 직접 입력하고 활용하면서 그것이 빅데이터를 형성하여 예상 재배면적 및 기후에 따른 생산량까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해마다 반복되는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 폭락이나 풍수해로 인한 품귀현상 등 극단적인 농산물 수급 불균형은 자연스레 해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송남근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송남근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가만히 앉아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우리 앞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디지털 혁명 또는 스마트팜은 자신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만 생각하고 있다면 20세기 초 자동차의 등장으로 사라져간 마차를 몰던 마부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 늘 그래왔듯이 변화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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