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추억은 세월을 거슬러 돌아보는 시간여행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찬란하다. 헤어지기 싫어 같은 길을 수도없이 오고가던 남과 여. 친구와 함께 지냈던 사춘기 우정의 시간들. 어린 시절 공기놀이 고무줄 하던 막다른 고향집. 부모님의 딸로, 사랑하는 연인으로, 엄마로, 아내로 살아 온 지난 세월을 되돌아 잠시 쉬어가는 쉼표를 찍고 싶었다. 추억여행을 약속하며 기다림 설레임 기대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때 우리는 안 보면 보고 싶고, 보면 행복했다.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빌려 고등학생들과 미호천 강가로 소풍을 갔다. 그곳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려 발 동동 구르며 찾아보았으나 헛수고였다. 값을 물어주기 위해 우리들은 각자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았다. 한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의리 그 이상의 하나가 되었던 우리 젊은 날. 하고자 하는 일은 똘똘 뭉쳐 해결했고,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능치 못 할 일이 없던 우리들의 시간이었다. 소외된 농촌 학생들을 가르치고 심지어 시간을 쪼개 야간자활학교 학생들을 돌보는 일당 백 의 일을 해 낸 겁 없는 청년들이다.

격변의 시절을 함께 보냈던 80년대 청춘들이 60줄에 다시 모였다.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믿음의 동지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친 것이다.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한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긴 시간의 간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편한 만남이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상실하게 잘 살아온 빛나는 얼굴들. 그들 속에서 멋지고 품위있게 익어가는 삶의 모습들이 보였다. 한 두 사람이 이야기를 꺼내면"맞아 그때 그랬지."맞장구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시절 이야기에 빠졌다. 전환의 여울목에 선 우리들은 40여 년 전 바로 그 자리의 주인공들이다. 고작 하루 반나절이면 만날 수 있음에도 수많은 시간을 돌아돌아 이제야 만난 것이다. 그들 모두 너무 바쁘게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았나 보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이 내려 올 때야 보이는 것은 분명 나이를 먹었다는 표식(表飾)일 게다. 건너편 산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고 자연의 소리와 색깔이 느껴지고 계절이 가는 것이 보인다. 그동안 참 무심히 살았나 보다.

누구나 어린 시절 아픈 기억의 파편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갑작스레 당한 엄마의 부재로 인한 사춘기 시절 외로웠던 마음의 상처. 부모를 떠나 자취하며 제 때먹지 못했던 배고픔. 친척 집에서 자라야 했던 채워지지 않는 2% 부족한 사랑. 친구로부터 받은 폭력 이 모든 어려움들을 감내하고 성장한 너와 나 우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김살 없이 밝게 긍정적으로 살아 온 그들이다. 너로 인해 나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힘을 주던 그네들. 그 세월 여기까지 반듯하게 잘 살아왔다 그리고 잘 살았다. 젊은 날 시간을 계수하며 되새겨 보니 내 삶의 틈새마다 사랑으로 채워졌고, 함께했던 그들이 내 인생의 보석이었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우리 집 장식대 위 빛바랜 사진 한 장. 사알짝 들춰보면 엄마 어릴 적 모습. 사진 한 장 가득 옛 추억 향수로 가득 채워져 있다. 모래 밥 꽃 반찬 소꿉놀이 하던 시절도 고장 난 시계처럼 그대로 멈춰버렸지.'사진 한 장'이란 시 속에 들어있는 고장 난 시계처럼 우리의 추억 여행은 잠시 멈춘 행복한 시간이었다. 추억이 영원하다는 것은 순간이 이어져 영원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순간은 인생이 살이 찌고 더 풍성해지는 것이다. 잠깐 멈추었던 시계가 가끔은 아주 가끔은 잠시 멈춤의 쉼표를 찍고 가도 괜찮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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