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여기저기서 신고하라고 난리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면 신고하라고 독려한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사람들이 이제 마스크를 기계적으로 쓰고 다닌다. 자가격리자를 목격하면 곧 바로 신고할 것도 권한다. 단속원들은 현장 점검을 하러 다닌다. 그러면서 빼놓지 않는 말,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바로 신고하세요"라고 한다. 주변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놓고 언쟁을 벌이는 경우도 흔히 본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을까. 단순히 코로나 전염을 막기 위한 과정에서 불거진 해프닝만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안데르센 동화에 할머니는 남편의 절대적 후원자였다. 남편의 유일한 재산인 말을 소로 바꾸고, 그 소를 다시 다른 것들과 바꿔 결국 썩은 사과를 들고 왔는데도 할머니는 잘 했다고 칭찬한다. 덕분에 할아버지는 부자와의 내기에 이겨 많은 금화를 얻는다. 무엇을 하든 자신의 아내가 신뢰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뢰는 개인 간의 인간관계든, 집단의 문제든 한 사회를 구축하는 중요한 정신적 버팀목 역할을 한다. 그 힘이 구축되었을 때 사회는 동력을 얻고 순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신뢰란 보편적인 규범을 준수하며 서로 정직하게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로부터 싹튼다. 이런 의미에서 한 사회의 신뢰자산은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집단적 이익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사회 구성원들이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한다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공동체를 침식시킨다.

얼마 전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사회의 불신 분위기는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국인들의 상호 신뢰도 질문에서 낯선 사람을 믿을 수 있느냐는 응답에서는 10명중 2명, 즉 20%에 불과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낯선 사람이 자신을 선의로 대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22.3%에 그쳤다. 미래세대에서도 우리사회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 찬 우리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불신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의심한다. 협동에 실패할 뿐만 아니라 그 불신의 프리즘은 더욱 확대된다. 불신의 해소는 사회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함께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뢰가 넘치는 사회에서는 신뢰가 신뢰를 낳고, 불신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불신을 낳는다. 신뢰와 불신은 상호적으로 반작용 관계다. 내가 상대방을 신뢰하면 상대도 나를 신뢰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불신하면 나도 상대를 불신하게 된다.

세계은행 조사에 의하면 '타인을 신뢰한다'는 응답자가 10% 포인트 하락할 때마다 경제성장률은 0.8% 포인트 하락한다. 사회적 신뢰는 경제대국으로 가는 필수조건인 셈이다. 개인 간에도 마찬가지다. 고전에 '자의불신인(自疑不信人)'이란 말이 있다.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은 남을 믿지 않게 된다.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남을 의심하며 책망한다. 내 탓이 아닌 남 탓으로 돌린다.

누가 뭐래도 신뢰는 사회의 근간을 강하게 만드는 최고의 자산이다. 신뢰성의 정도에 따라 그 사회의 건강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기능한다. 그렇다면 코로나 19를 겪고 있는 우리의 신뢰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서로를 감시하고 신고하라는 구호가 난무하는 현실이 우리사회의 신뢰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반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방역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는 한다. 그럼에도 감시와 신고를 독려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방역은 잠시지만 이후 신뢰자본 회복은 더 중요한 문제다. 의심과 불신을 권하는 정책 당국자들이 그나마 20% 수준인 우리사회의 신뢰자산마저 침식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사회에 끼칠 수 있는 부정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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