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사람은 삶의 여정을 남기고 싶어 한다. 어떤 이는 자신이 겪은 희로애락을 사실대로 적어 남긴다. 누군가는 행복했던 순간과 아름다운 몸매를 인생 샷으로 남긴다. 인생 샷을 찍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감성여행을 떠나고, 매혹적인 몸매를 만들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 인생 샷은 포토 존의 배경을 감각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기술에서 탄생한다. 사람은 살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사진에 담아 좋았던 추억을 소환하며 행복을 만끽한다.

인생의 포토 존은 매 순간의 일상이고 삶의 이력으로 남는다. 인생의 포토 존에는 누구나 예외 없이 고락이 병존한다. 삶의 포토 존에서 포즈를 취하는 일이 누군가에겐 영광스럽고 누군가에겐 치욕적일 수 있다. 인생의 포토 존에 서기가 두려운 사람도 있고, 당당한 사람도 있다. 삶의 흔적은 행복한 일이든 불행한 일이든 무의식속에 추억과 기억으로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다.

내장산에 단풍이 절정일 무렵 목격한 일이다. 내장사 입구 앞뜰에 있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에 물든 단풍의 빛깔이 탄복할 만큼 곱고 아름다웠다. 그곳에는 누구라도 인생 샷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유혹하는 포토 존이 있었다. 그 포토 존에는 의자가 놓여 있었고, 그 의자에 앉아 인생 샷을 찍는 단풍객들이 연신 바뀌었다. 어느 틈에 노년기의 초년생으로 보이는 일행이 포토 존에 있는 의자에 앉아 음식을 펼쳐 놓고 우의를 확인하며 왁자지껄 댔다. 그 즈음 그들과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일행이 "포토 존에서 음식을 꺼내 먹으며 오랜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결례가 아닌가요."라며 퉁을 놓았다. 그 말을 들은 일행은 민망했던지 곧장 자리를 떴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남해 여행 중에 보리암 일출을 보며 겪은 일이다. 보리암에는 일출을 배경으로 인생 샷을 찍고 싶어 하는 곳으로 알려진 포토 존이 있다. 그 포토 존을 한 모녀가 전세 낸 것처럼 꼼짝 않고 서 있어 인생 샷을 찍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우리 부부도 인생 샷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아내가 모녀에게 "지금 계신 자리가 인생 샷을 찍고 싶어 하는 포토 존 이예요."라며 에둘러 말했다. 딸은 곧바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 딸의 모친은 "전망 좋은 곳에서 일출을 보려고 그래요"라는 말로 일축했다. 포토 존 주변에는 일출을 감상하기에 충분한 여유 공간이 있는데도 그 딸의 모친은 포토 존으로 소문난 자리만을 고수했다.

삶의 문제는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문제가 풀리는데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삶이 꼬이게 된다. 성숙한 어른과 미성숙한 어른의 차이는 타인의 마음을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과 입장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성숙한 마음이다. 힌두교의 성인 고빈다는 "우리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들 때문에 변화하며, 우리가 받아들인 것들은 우리의 받아들임을 통해 변화한다."고 했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법륜 스님은 "모르는 걸 안다고 붙들고 있거나 틀린 걸 안 틀렸다고 우기기 때문에 인생이 힘들어지고 발전이 없습니다. '이건 내가 잘못했구나, 이건 내가 틀렸구나, 이건 내가 몰랐구나'하고 인정하면 삶이 참 가볍고 자유로워집니다."고 했다. 타인이 나에게 준 불쾌한 감정을 껴안지 않고 버리는 순간, 상대방을 탓하며 못마땅해 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내장사 앞뜰의 단풍과 보리암의 일출이 나를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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