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올해는 국내외에서 역사적인 사건, 사고가 유난히 많다. 12월의 마지막까지도 급박하게 진행 될 것이다. 사건은 인간이 주 원인이고, 사고는 자연적인 재해가 대다수이다.

서기 1636년 12월은 우리나라의 역사상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 압록강이 얼자말자 청나라 대군의 전광석화 같은 급습으로 '병자호란'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여진족 '누르하치'의 여덟 번째 아들 '홍타이지'(皇太極)는 세계최강의 팔기군을 강력한 리더십으로 지휘하여 연전연승을 이루더니 스스로 청나라 황제로 등극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온 나라가 시산혈해가 되었음에도 인조반정 등의 내분으로 지새우던 조선은 40년이 채 지나기 전에 또다시 전란에 휩싸였다. 급히 남한산성으로 몸을 숨긴 인조와 조정은 또다시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뉘어 적전 분열로 시간을 보낸다. 그런 사이에 얼어 죽고 굶어 죽은 조선의 백성들과 하급군사들의 시신은 남한산성의 시구문에 쌓여만 갔다.

두 달 가까이 성에 갇힌 인조는 오랑캐라고 비웃던 청 태종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빈다. "명나라는 우리와는 아버지와 아들의 나라입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항복하면 정말 살려주시는 겁니까? (청나라)황제 폐하가 용서하셔도 조선 백성이 저를 용서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엎드려 비 오니 저의 피맺힌 정성을 보아서라도 살려 주십시오."

결국 인조는 1월 30일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삼배구고두를 올리며 항복한다. 조선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청군은 명나라의 공격을 대비하여 급히 회군한다. 청나라는 갓 태어났지만 조선이라는 화근을 미리 제거하고 곧 수 십 배나 큰 명나라를 정복하니 역사가들은 '세계적인 미스테리'라고 기록한다. 병자호란은 두 달 만에 끝맺지만 60만 명의 죄 없는 조선백성은 끌려간다. 노약자는 화살바지가 되고, 처자들은 몸을 더럽히고, 혹은 노비가 되었다. 요행이 탈출하여 다시 조선 땅을 밟아도 항복조약에 따라 조선조정에 의해 체포되어 다시 청나라로 끌려갔다. 돈 많은 양반이나 지주들은 엄청난 속환금을 주고 자기 식구를 사와야만 했기에 나라는 더더욱 가난해질 뿐이었다. 비극에 처한 한사람, 한사람 우리의 조상이 아닌 분이 없다.

서애 유성룡이 "비록 종족은 다르지만 오랫동안 조선에 의탁해 살아온 자식"이라고 할 정도로 조선 조정의 상하가 여진족을 '변방의 오랑캐'로 경멸해 왔다.

여진족의 추장 퉁밍거티무르가 1395년과 1404년 두 번에 걸쳐 태조 이성계와 태종에게 조공을 바치러 한양을 다녀간다. 조선은 그를 신하로 삼아 '오도리 상만호(上萬戶)'라는 직책을 주었다. 퉁밍거티무르는 청태종의 직계 조상이다. 조선은 훗날의 청나라를 '아들'에서 '신하'로 밑에 두다가 '형님'으로 모시다가, 병자호란으로 돌연 생사여탈권을 빼앗기고는 '신하'가 된다. 불과 214년 만의 일이다. 그로부터 조선은 청나라가 망하는 날까지 약 300년간 청의 속국이 된다.

청나라로부터 겨우 벗어나자 1910년 경술년, 이번에는 일본에게 아예 나라를 빼앗긴다. 36년 뒤인 1945년 8월 15일 외세의 힘으로 광복이 되지만 후유증은 극심해진다. 남의 생각에 놀아난 사상투쟁으로 남과 북은 결국 1950년 6월 25일, 초유의 동족상잔의 비극에 휩싸여 지금까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 되어 있다.

겨우 일제에서 벗어나 동란을 겪고 결사적인 몸부림으로 세계 최빈국에서 중진국으로, 다시 선진국의 문턱에 선 대한민국은 또다시 내분이 극심해지고 있다. 세계 역시 중국의 우한에서 발발한 코로나19 팬테믹으로 사망자는 세계대전보다 더 많아지고 있다. 미국 또한 대선이 지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당선자를 확정하지 못한 채 내분은 확산으로 치닫고 있다. 누가 당선자가 된다하여도 링컨시대의 남북전쟁과도 같은 비극적인 사건, 사고가 기다리지는 않는지 크게 우려된다.

이처럼 투쟁은 개인에서 국가로, 진영의 이념투쟁으로 점점 더 큰 규모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는 바야흐로 공산주의와 자유시장주의의 마지막 싸움인 아마겟돈의 건곤일척이 다가 오고 있다. 이제 우한폐렴은 인류에게 '대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역사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는 '참다운 사람'을 찾기 위해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녔다. 우리에게는 '인인인인인(人人人人人)' 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잠언이다.

장영주 화가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우리세대는 인류생명과 문명사에 밝은 진화를 향하여 한 뼘이라도 나아갈 수 있을까? 병자호란, 그 해 겨울의 추위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혹독한 시절을 넘어 여기까지 이어준 역사의 무명인들께 감사도 올려야 한다. 이제 한 사람 한사람이 양심을 회복하고 내면의 등불을 찾아 나아가는 연말연시가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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