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안창호 충북스타트업협회 의장

그 많던 '욜로족'은 어디로 갔을까?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기자'로 대표됐던 '욜로족'의 행방이 묘연하다.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감염병으로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커피숍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조차 사치가 돼버린 세상에서 '욜로족'은 시나브로 종적을 감췄다.

'욜로족'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향유하고 싶은 문화나 상품을 소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들은 안정된 일자리가 사라지고 거대한 플랫폼만 남아 임시 계약직만 쏟아 내는'긱(Gig) 이코노니'시대의 바로미터였다.

이들은 평생 벌어도 구입하기 어려운 '내 집' 마련을 위해 현실을 참고 견디지 않는다. 월세에 살면서도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전국 어디라도 달려간다. 휴가철에는 1년 동안 모은 돈으로 친구들과 해외여행도 즐긴다.

그리고 갑자기 세상이 변했다. '코로나 19'를 맞이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기준으로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로 구분했던 과거에서, 코로나를 중심으로 BC(Before Covid)와 AD(After Disease)로 나뉘는 오늘을 살고 있다. 해외여행은 물론 친구들과 모여서 술 한 잔 기울이기도 힘든 시대가 됐다. 변화된 세상만큼이나 '욜로족'도 '파이어족'으로 급 선행 중이다.

'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은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저축과 투자에 몰두하는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로 대표된다.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과 '조기 은퇴(Retire Early)'가 인생 최대 목표다.

'과하다' 할 정도로 소비를 줄이는 짠돌이, 짠순이로 낭만을 위한 커피 한 잔의 여유도 허용하지 않는다. 안 먹고, 안 쓰고, 안 입는다. 대신 주식이나 부동산, 갭 투자 등 다양한 방식의 재테크에 몰입한다.

'욜로족'에서 '파이어족'으로, 그리고 2021년 신축년(辛丑年)을 코앞에 둔 지금. '자본주의 키즈'가 몰려오고 있다. 평생을 성실하게 일해도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갖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세상에서 '자본주의 키즈'는 자본 시스템을 냉정하게 진단한다. 자신에게 맞는 재테크를 위해서라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쏟는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다.

동시에 자본의 도구로만 살지 않겠다는 의지도 분명하다. 남들이 인정해 주는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것을 '삶의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값비싼 신상을 구입하기보다는 중고마켓을 이용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활용도가 낮은 물건은 되파는 등의 합리적 소비문화를 선도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똑 부러지는'세대를 맞이하게 됐다. 자본에 굴하지 않으면서도 시스템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세대가 생산과 소비의 주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래는 계획적으로 대비를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경험은 포기하지 않는 세대다.

정보의 비대칭으로 또는 시장을 독점한 기업들로부터 더 이상 '호구'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가 명확하다. 또한 어머니 친구로부터 추천받은 금융상품일지라도 당장 결정하는 것은 미뤄둔다. 어머니가 "내가 아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돈 벌면 좋지."라는 미덕은 아쉽지만 이제 과거의 말이 됐다. 꼭 사야 하는 이유가 없다면 바로 구매하는 일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가성비(價性比, 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는 물론 가심비(價心比,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의 비율)까지 저울질하며 소비하기 때문에 결정은 더욱 신중해진다.

서울대 트렌드분석센터의 2021 전망에 따르면 자본주의 키즈가 젊은 세대만 지칭하지 않는다고 한다. IMF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시스템에 익숙해진 기성세대 또한 자본에 의한 사고와 행동한다면 누구나 해당된다.

자본주의 키즈를 통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시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예측이 아직까지 우세하다. 하지만 시쳇말로 '돈이 되는 일인가? 돈이 되지 않는 일인가?'식의 이분법적 사고(二分法的思考)로 나와 사회를 판단하는 자본의 괴물이 탄생되지 않도록 사회적 자본에 대한 논의도 함께 고민돼야 할 것이다.

1965년부터 약 8년간 베트남전에서 포로가 됐던 '제임스 스톡데일'이라는 미국 장교가 있었다. 그와 함께 포로수용소에서 수감됐던 미군 중 상당수는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풀려날 거야', '다음 부활절에는 풀려나겠지'라고 일반적인 낙관주의자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살하거나 죽었다. 하지만 비관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생존에 대한 의지가 강한 '합리적 낙관주의자'는 가혹한 포로생활을 견뎌냈다.

안창호 충북스타트업협회 의장
안창호 충북스타트업협회 의장

2020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녹녹지 않다. 살아 남고자, 살기 위해서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이럴 때 일 수록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 보되, 믿음은 버리지 않는>필자를 비롯한 많은 독자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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