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도망칠 수 없는, 출구 없는 세계란 공포 그 자체다. 그 공포의 무대에서는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의 운명을 쉽사리 지배하며 암전(暗轉)시킬 수 있다. 약자는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와중에 점차 경직되고 자연스럽게 상대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표적이 되었을 때 그 절망감이란…" 나이토 아사오의 책 '이지메의 구조'에 나오는 한대목이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절망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학교폭력이 사회적 숙제가 된지 오래다. 뉴스의 한 꼭지에는 학교폭력이 항상 포함되어 있다. 왜 이렇듯 학교폭력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일까. 학교폭력은 해결할 수없는 영원한 숙제인가. 학교폭력이 발생할 때마다 수많은 대책들이 쏟아지지만 그런 대책들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폭력을 견디지 못해 피해자들이 몸을 허공에 날릴 때마다 안타깝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듯이 학교폭력 또한 학교라는 제도와 공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학교폭력은 반복적,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피해자들이 당하는 고통의 정도도 매우 심각하다. '학교폭력 실태보고서'에 의하면 피해자들 중 60.8%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 중 11.65%는 자살까지 생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생활의 어려움은 물론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로 변하는 2차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스마트폰 시대이후 온라인 폭력이 급증하는 것도 문제다. 삼성과 푸른나무재단이 공동개최한 '2020년 청소년 포럼'에 의하면 학생들의 사이버 폭력 경험율은 26.9%, 4명중 1명꼴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유로는 첫째, 내가 당한 사이버 학교폭력을 보복하기 위해 45%. 둘째, 상대방이 싫고 화가 나서 39.4%. 셋째, 재미나 장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21%. 넷째, 내 의견과 달라서 13.7%로 드러났다. 사이버폭력의 형태로는 사이버 욕설, 사이버 따돌림, 사이버상의 갈취 강요, 신상정보 유출, 스토킹, 명예훼손, 성폭력 공개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사이버 폭력은 학교폭력의 한 형태로 물리적 폭력보다 더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자신에 대한 자율적 규율능력과 통제가 훨씬 어렵다. 사이버 가해를 해도 물리적 폭력에 비해 별것 아니라는 안이한 인식도 동시에 작용한다. 이런 사이버 폭력의 특성 상,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가해한 사이버 폭력으로 피해자는 인격이 파괴된다.

모두가 행복한 학교,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각종 선거공약에서도 학교폭력 문제는 단골 이슈다. 학교폭력 해결 없이 행복한 교육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는 방증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속가능한 교육적 접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우리사회의 전반에 퍼져있는 폭력에 둔감한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 이는 학교폭력이나 사이버폭력이 단순히 독립된 폭력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모든 폭력은 그 주류사회의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 것은 그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그 노력은 사후대책이나, 지엽적인 문제가 아닌 거시적이면서도 학교풍토 전반을 개선하려는 노력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인간주의적인 '휴머니즘형' 학교풍토를 만드는 일이다(인간주의적인 학교를 가늠할 수 있는 다양한 지표로는 한병선의 '학교폭력의 사회학' 증보판(2020) 137~139쪽 참조). 인간적인 학교풍토가 확산되었을 때, 학교폭력은 물론 사이버 폭력문제도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 따뜻한 휴머니즘이 스며있는 학교와 사회풍토를 만들었을 때 문제의 해결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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