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나는 올해 난생 처음 주말농장에 배추를 재배했다. 배추 모종을 심는 적기가 7월 말에서 8월 초순인 것을 모르고 8월 중순이 지나 심었다. 배추 모종을 심는 시기를 놓친 탓인지 거름을 충분히 주고, 물도 부족하지 않게 주기적으로 주고, 병충해를 막아주며 정성들여 키웠지만 배추가 제대로 크지 못했다. 우리 집 김장배추는 내가 마련하겠다고 아내에게 큰 소리쳤는데 허풍만 친 꼴이 되고 말았다. 배추 수확이 신통치 않았던 것은 배추 모종을 적기에 심지 못한 내 탓임을 받아들이고 나니 속상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배추 농사를 지을 때 모종을 심는 적기가 있듯 세상살이에도 때가 있다. 살면서 때를 놓치면 일을 그르치게 되고 삶이 고단해진다. 그래서 이맘때쯤 되면 누구나 한 해의 삶을 성찰하고 궁리하는 시간과 마주한다. 올 한해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성찰하는 시간은 새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궁리하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삶은 미진했던 일들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고 다짐하는 시간을 거듭하며 충만해진다.

한 해의 삶을 성찰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살았는지 들여다본다.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은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을 이루었느냐와 상관없이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게 여기는 마음에서 움튼다.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설사 부정적인 마음이라도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려고 하면 그 마음은 우리를 파괴시키지 않고 자연스레 떠나가게 된다."고 말한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며 살지 못하고 '잘난 나'와 칭찬에 우쭐대고 '못난 나'와 비난에 위축되며 살았음을 알아차렸다. 자기답게 산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삶이다.

삶과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았는지를 들여다본다. 나의 내면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실제로 말하고 행동하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와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인식했다. 삶을 의식적인 이성의 주도로 살았다고 믿었지만 무의식적인 감정의 지배를 받고 습관적으로 살아왔음을 지각했다. 나는 좋은 성과로 인정받았던 일과 행동만이 아니고,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해 비난받았던 일과 행동도 묵살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삶에서 겪는 경험을 잘 받아들일수록 그 경험들은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성장시켜준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았는지를 들여다본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의 가치에 맞춰 타인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폄하하고 힘들게 했다. 나는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좁은 소견에 사로잡혀 내 생각이 옳다는 아집에 빠져 내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려 하지 않고 고집을 피웠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존중하고 타인의 마음과 입장을 헤아리며 성숙한 마음으로 사는 삶이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누구나 살면서 수많은 문제를 겪고 과오를 범한다. 삶의 문제와 과오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와 과오를 알아차리지 못하는데서 나타난다. 법륜 스님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사실 파악에 오류가 생기고 그 오류에 기초해서 생각하니까 판단이 잘못되고 말이나 행동이 잘못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살면서 문제와 과오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문제와 과오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삶이 꼬이고 고통스럽다. 삶의 문제와 과오를 해결하는 비법은 문제와 과오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마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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