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일선 충북환경연대 대표

충주시민의 벗 호암지는 적지 않은 아픔이 어려 있다. 일제가 수탈을 목적으로 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민초들을 강제로 동원해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또한 과도한 물 사용료(水稅)와 비료강매로 인한 농민들 애환과 투쟁도 서려 있다.

이런 아픔은 생략되거나 왜곡된 채 조선총독부 관보와 나카무라(中村資良) '조선은행회사요록'(朝鮮銀行會社要錄), 이영(李英) '충주발전사', 오토거천 '忠州觀察誌' 등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당시 일제는 충주수리조합, 대가미수리조합, 금능·칠금수리조합을 만들었는데 호암지엔 그 책임자를 칭송하는 비(碑)가 남아 있다.

모두 한자로 됐는데 앞면은 '충주수리조합장 영목정일씨 사업성공기념비'라고 되어 있다.

뒷면 일부를 소개하면 '公本日本山梨縣人也'(공본일본산이현인야), 공은 본래 일본 야마나시현 사람이다./ 明治四十年求居忠州篤愛鮮(명치사십년구거충주독애선), 명치 40(1907)년 충주에 와서 살면서 깊이 조선(사람)을 사랑하였다./ 人常思爲鮮人設(인상사위선인설), 영목씨는 늘 조선인들에게 베풀 생각을 하였다./ 永遠之事業奐在(영원지사업환재), 길이 빛날 영원한 사업으로/ 壬戌創立水利組合(임술창립수리조합), 임술(1922)년에 수리조합을 창립하였다./申凡十一年間(신범십일년간), 무릇 11년 동안 거듭하여/ 公一心董勵夙夜靡懈(공일심 동여숙야마해), 공(영목씨)은 일심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게으름에 굴복하지 않고 힘썼다.』라고 돼 있다.

끝으로 1933년 5월1일 영목정일씨의 떠나감을 애석히 생각하는 조선인들이 그 공로를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비석을 세운다고 적혀 있다. 이 비를 볼 때 마다 호암지가 그저 호수가 아니요 조상님들 피눈물이 고인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암울했던 시절 호암지 역사를 왜곡되게 담은 이 비(碑)는 우리나라 근대화과정의 수리조합을 이해하는 소중한 1차 자료다.

호암지는 근래에 들어와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도로 개설로 아름다운 리아스식 호변은 많이 사라졌다. 사천개에서 보를 만들어 충주천물을 유입시켰던 시설도 폐쇄됐다. 이로 인해 수질이 악화되어 충주시에서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언젠가는 호수를 관할하는 농업촌공사가 더베이스호텔 앞 호암지 일부를 매립해 용지로 매각하려고 했다. 환경단체와 뜻 있는 시민, 언론 노력으로 철회될 수 있었다. 위락단지로 만들려는 노력도 있었다. 하지만 시민들 바람대로 생태호수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간 호암지에 많은 조형물과 알림판이 세워졌다. 산책로도 만들고 수질개선도 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 비문에 대한 설명판을 세월 달라는 요청은 지금까지 거부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1년 전 아예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 비석을 치워 버리고 최근 경관조명까지 했다. 참 어이없는 일 아닌가?

박일선 충북환경연대 대표
박일선 충북환경연대 대표

조상님들 아픔을 외면하고 불만 밝히면 밝아지는가? 조상님들 피땀을 외면하고 물만 맑히면 맑아지는가? 화장만 한다고 예뻐질 수 없듯이 엄연히 알려야 할 역사를 애써 감추어선 호암지는 맑아지지도 밝아지지도 않는다.

조선총독부 충주군이 아닌 대한민국 충주시가 왜 아픔의 역사를 외면하는지 묻고 싶다. 비석을 제 자리로 돌려놓고 설명판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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