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에 돗 단 듯
순풍에 돗 단 듯
  • 중부매일
  • 승인 2021.01.1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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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신축년 새 아침이 밝았다. 새로운 각오로 새벽 일찍 어둠을 뚫고 문암생태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뽀드득 거리며 걷고 있는 발걸음이 가볍다.

몇 년 전만 해도 남편 손을 잡고 5시 30분이면 나서던 길이었다. 유산소 운동이 보약이라며 걸었으나 무뤂을 다치고부터 멈춰버린 이 길을 새로운 각오로 새해 첫날 나서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흥얼흥얼 동요를 부른다.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 발자국/ 누가누가 새벽길 떠나갔나/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단단히 모자와 장갑 마스크 까지 쓰고 어둠을 뚫고 까치 내 벌판을 걷는 난 용감한 여인.

뇌경색과 식도암, 갑상선과 싸우는 남편과 종합병원을 찾아 헤매던 암흙 같은 13년의 세월을 버티고 살아왔다. 이제 먹구름이 가시고 순풍에 돗 단 듯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희망을 꿈꾸어도 좋을까.

건설 회사를 다니던 아들이 사고로 다리에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지난 1년 동안 투병 중 이었다. 가정을 가진 아들은 회복이 덜된 몸으로 다시 일선에 나섰으나 다친 곳을 또 다쳐 병원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저런 일들과 코로나19로 난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벼랑 끝에 내몰린 꼴이었다.

남편과 아들은 내게 희망의 등불이다. 바람 앞에 등불처럼 사그라질 듯 가물대는 불빛을 바라보는 심정은 안타깝기만 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한 고개를 넘기고 나면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나 테크를 걸었다.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듯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 아픔을 무어라 표현하리.

새벽에 잠 깨여 두 손 모으고 순풍에 돗단 듯 새해엔 가정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한다.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염원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눈길을 조심조심 걷는다.

먼동이 틀 때가 되었건만 자욱한 안개가 끼여 해맞이는 어려울 것 같다. 코로나는 사람들의 발을 묶어 버린 탓으로 청소년 몇 명만 보일뿐 공원은 고요하기만 하다.

아빠가 딸 둘을 데리고 눈꽃 핀 풍경을 촬영하는 모습이 다정하다. 문암정 (팔각정)에 우두커니 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소나무위에 쌓인 눈꽃이 아름답다. 고라니 발자국과 키 큰 사나이가 걸어간 발자국이 선명하다. 발걸음 길이가 꽤 길다. 난 그 뒤를 종종 걸음으로 걸었다.

세상이 하얀 것이 깨끗하다. 마스크를 벗고 상큼한 공기를 들이 마신다. 쓰레기 더미위에 심겨진 나무들이 이젠 제법 나무그늘을 드리울 만큼 자랐다. 미니 정원이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고 충북 아동문학회원들의 동시가 군데 군제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방에 갇혀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보면 아옹다옹 싸우는 어지러운 세상이야기가 짜증스럽게 반복되곤 한다. 힘없는 난 눈감고 귀 막고 싶을 뿐이다.

까치내 들판이 하얗게 펼쳐지고 멀리 보이는 오창 과학단지의 고층 건물들이 희미한 안개사이로 보인다.

테크노 단지의 우뚝 우뚝 선 고층 아파트가 신도시를 창출하고 있다. 재개발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여 희망으로 다가온다. 올 한해가 지나면 문암 생태 공원 주변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나날이 늘어나는 강서2동의 인구와 주민들의 새로운 각오는 희망으로 가득하다. 까치 내 마을을 더욱 풍성하게 가꾸게 될 것이다.

꽁꽁 언 손을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고 돌아오며 작게는 내가정과 이웃을 돌아보며 모든 액운을 다 털어버리고 순풍에 돗단 듯 열심히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묵묵히 내 도리를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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