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고단했던 한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새해가 밝아왔다. 심청이가 마주했던 거친 파도 같았던 지난 한 해였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치맛자락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외씨버선처럼 숨을 죽이고 살아온 날들이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온몸을 다해 온 힘을 다해 한 해의 능선을 넘어왔지만, 앞을 보니 더 높은 능선이 가로막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높은 산 위에서도 꺾이지 않는 나무처럼 지난해 능선을 무사히 넘어온 것에 대해 감사함과 고마움이 앞선다.

어느새 칠 부 능선을 넘어서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본다.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중년 시절을 거쳐 이제는 장년 시절을 맞이했다. 밀려가는 강물처럼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흐르고 있다. 뒤돌아보면 걸어온 발자국이 낙관처럼 선명하게 산을 이루고 있다. 위를 올려다보면 올해 넘어가야 할 능선이 비밀의 성문처럼 굳게 닫혀 있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 장년에게 내일이란 소중한 자원과도 같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인생 후반부에 나타난다고 한다. 말년에 더 아름답고 창조적인 인생의 장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능선이 높을수록 골이 깊고 풍경이 아름다운 법이다.

새해를 맞아 산에 올라섰다. 겨울바람이 거세다. 흑백사진 속 생명체들이 무채색 바람 소리와 화음을 더 한다. 겨울 산이 주는 여백의 선명함은 생각과 마음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시켜주었다. 구름이 벗겨지면서 온전히 드러나고 있는 산의 능선이 더욱 매력적이다. 눈앞에 좌편은 청송이 우편은 녹죽으로 품이 넓은 산은 흔들리지 않는 힘을 보여준다. 그래서 걸음을 멈출 수 없다. 걸음에 생각과 마음을 싣고 걷다 보니 이 한걸음이 인생의 한걸음이 될 의미 있는 걸음임을 깨닫는다. 걸음을 멈추면 사유도 멈춘다.

등산한다는 것은 자연과 친구를 맺는 것이다. 오르는 길이 힘들고 지치고 고통이 찾아오지만 이 또한 친구이기 때문에 오른다.

물길을 거슬러 산을 만난다. 정상에 오르니 겹겹이 넘실대는 산줄기가 산이 산을 안고 있다. 새해 새날과 인사를 나눠본다. 모든 시간이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지나온 능선을 바라보면 태어나서부터 현재까지 삶의 모든 풍경을 담고 있는 구릉은 모든 것 들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있다. 청춘의 능선을 넘을 때에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이상(理想)과 꿈이 있었으므로 용감하게 넘을 수 있었다. 망망한 삶의 한복판에서도 생계의 고단함이 아닌 소명의 즐거움으로 살다보다 가치 있는 삶을 부여 받았음을 감사한다.

이렇게 장년이 되니 추구하던 사상도 이념도 새로운 생각으로 전환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목표에 대한 성취감도 얻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음에도 허탈해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목표는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조금씩 산을 오르듯이 위를 향해 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길이 오름 내림이 있듯이 인생길도 오르막 내리막이 있게 마련이다. 고난의 오르막길에서 내려오고 싶을 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더 올라가고 오르다가 또 다른 어려움이 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오르고 이런 반복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성장시켜야 한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나의 내리막길도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처럼 마음가짐을 가지고 내려올 것이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산과 산을 이어주는 것은 능선이다. 삶과 삶을 이어주는 것은 활동이다. 해마다 일의 능선을 넘어왔다. 앞으로도 이 능선을 향해 꿋꿋이 나아갈 것이다. 마침내 인생의 마지막 일을 마치는 날, 내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능선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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