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코로나19 발생이후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엄중함'이다. "이 엄중한 시기에", "이 엄중한 상황에서" 등 엄중함이 일 년 내내 계속되고 있다. 그런 이유겠지만 눈만 뜨면 코로나 확진자 알림문자도 장마철 비 오듯 쏟아진다. 거주 지역은 물론 이웃 지자체 문자까지 합세하고 있다.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 차단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혹시나 해서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온 국민이 전체주의적 관리 체제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제는 집단적 피로감에 지쳐가는 상황까지 왔다. 이런 모습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전국적으로 300여 곳의 헬스장들이 정부의 방역지침에 반발하여 영업을 강행했고 이런 반발은 호프집, PC방, 유흥업소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삭발 항의시위를 벌였다. 정부의 무관용 처벌까지 감수하고 집합금지 명령을 어겼다. 상황이 이쯤 되면 한계가 온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은 오매불망 기다려왔던 백신접종이다.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미증유의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을 종식시킬 수 있는 게임 체인저는 백신 접종밖에 없기 때문이다.

드디어 백신이 나왔다. 영국을 시작으로 이미 상당수의 국가들이 선제적으로 접종을 시작했다. 이스라엘, 브라질, 바레인, 영국, 미국, 유럽, 칠레, 멕시코, 오만 등, 많은 국가들이 오늘도 백신접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집단면역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겨 경제회복을 하겠다는 기대를 밝혔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2021년 1월 말까지 두 차례의 백신접종을 모두 완료하겠다는 계획이다. 러시아와 중국 역시 자체 개발한 백신으로 접종을 시작한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나라들의 접종 상황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봐야 하는 현실이다. 오직 백신 접종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던 국민들이 허탈해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접종을 시작한 모든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백신개발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빠르게 백신접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방역 리더십 덕분이다. 이들은 코로나19 초기인 지난해 봄부터 적극적으로 백신 확보에 나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뉴질랜드는 작년 5월 확진자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테스크 포스를 구성하여 백신 개발사들과 직접협상을 벌였다. 호주는 백신 구매에 주식의 '프로그램 투자' 개념을 도입하여 제조방식이 서로 다른 백신을 구매하는데 성공했다. "구매 순서대로 백신을 공급받을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국민을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하겠다"는 총리의 결단이었다. 유럽연합(EU)도 전 인구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백신물량을 확보했다. 유럽연합 인구 약 4억5천만 명에 대한 백신 확보율은 172.4%다. 이런 결과가 구경밖에 할 수없는 우리와는 달리 선제적인 백신접종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 최근에는 요양병원과 정부가 관리하는 구치소에서 많은 환자들이 발생했다. 서울 동부구치소의 경우 재소자의 50% 가까이 확진자가 나왔고 이들이 '살려달라'는 손 팻말을 창밖으로 흔드는 모습은 가히 해외 토픽 감 그 자체였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일본이 유람선을 코호트 격리시켜 바이러스 배양접시라고 비판했던 그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되었다. 남미 국가의 감옥에서 환자들이 집단적으로 발생했던 모습 역시 어느 순간 우리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이런 속에서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1년 내내 참아온 국민들과 경제적으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서민들을 생각했다면 엄중함과 무관용 처벌만을 강조하기 전에 다른 나라들처럼 벌써 백신접종이 이루어졌어야 했다. 접종은 개시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에게는 큰 희망이 될 수 있는 게임 체인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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