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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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부매일
  • 승인 2021.01.2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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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오계자 소설가

언제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갑자기 '노(老)'를 느끼면서 앞세우기 싫어도, 모든 게 설어도 '老'는 삽짝에서 알찐거린다. 경노우대증을 받던 날, 아직 철도 덜 들었는데 무슨 경로우대증이냐며 미달임을 강조하며 도리질을 해도 경춘선 공짜 타는 재미를 톡톡하게 누렸다. 오늘은 젊은이들 틈에 끼어 영화 연애 조작단(시라노)을 봤다.

사랑에 대해 정의를 하라면 사람마다 제각각 많은 이론이 나올 것 같다. 누구나 사랑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는 가지고 있을 테니까. 오늘 본 이 영화에서는 '믿음'을 핵심으로 했다. 믿음이 깨진 사랑은 이룰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에드몽 로스탕 작품 '시라노'를 코믹하게 영화화 한 것이다. 실제 인물인 프랑스 당대 최고의 검객이라고도 했던 시인이며 음악가인 시라노가 자신의 외모(지나치게 큰 코) 때문에 그토록 연모하는 록산느에게 고백도 못해본 채 가슴앓이를 한다. 그러던 중 록산느를 사랑하는 크리스티앙이 록산느와 맺어지도록 자신의 가슴 속 사랑을 아름다운 언어와 뜻 깊고 절절한 시를 동원해서 편지를 써 준다. 그 내용이 얼마나 절절했을까. 짝사랑이 더 절절하다. 자신의 연심(戀心)은 죽는 날까지 가슴에 묻어두고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사랑을 전하는 '시라노'는 연극으로도 연출 되었다.

그 시라노를 이 영화에서는 어느 가난한 연극단원들이 자금 마련을 위해 연애 조작단이 되어 연애에 서툰 젊은이들에게 맺어지도록 도와준다. 때로는 탐정이 되고 때로는 영화 촬영을 방불케도 하면서 코믹하게 진행 된다. 그러던 중, 하는 짓은 찌질이 같아도 순수한 청년이 의뢰한 대상이 조작단의 대표가 사랑했던 여인이다. 대표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일이 성사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지만 지질이 청년의 불같은 사랑을 말릴 수가 없다. 그 여인은 결국 눈치를 채는 것 같지만 믿음이 깨진 대표보다는 진실하기에 믿음이 있는 찌질이 청년을 선택한다. 대표도 지난날 자신이 먼저 믿음을 깬 사실을 반성하며 시라노처럼 지질이 청년에게 그 여인이 좋아하는 곳, 좋아하는 색깔, 좋아하는 음악 등 취향과 성격을 참작해서 대화를 하도록 도와준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찌질이 청년이 사랑을 위해 불법은 아니지만 의리 없이 벌어들이던 검은 돈을 포기하고 비양심적인 행위도 청산하는 것을 보면 역시 노력 없이는 사랑을 얻을 수 없음이다. 뜨거운 사랑으로 만나서 수십 년을 함께 살던 부부지간도 믿음과 노력이 없으면 곧 금이 간다. 부부는 평생을 애틋한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노력으로 금슬이 좋은 부부가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믿음이 없으면 모래성 쌓기며 아무리 믿음이 단단해도 노력이 없으면 쉽게 굳어버린다.

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수필가

오래 전의 일이다. 남편과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짝사랑이라도 영화 같은 애틋한 사랑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했더니 화를 낼 줄 알았던 남편이 "이 몸이 어떠신가요? 미쓰 오!" 하면서 내 앞에서 개그를 하는데 어찌나 고마운지 그동안 식었던 정이 다시 되돌아오는 느낌을 받았다. 남편의 그런 이해와 유머 덕분에 남이 보기에는 투닥투닥 자주 싸우는 부부지만 우리는 재미있게 살았다. 화를 내고 다투면서도 속마음은 자신의 잘못을 안다. 알면서 속내를 내놓지 못하고 상대의 잘못만 들추어 다투는 것이다. 부부는 그런 상대의 속내까지 알기에 싸움도 칼로 물배기가 되는 것이다. 서로의 속내를 안다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원래 마음 표현에 약한 민족성이라 말이 쉽진 않지만 믿음이 있기 때문에 평생을 정주고 정 받으며 산다.

사랑은 서로를 믿고 이해하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다 노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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