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에서조차 밀려난… 주거 벼랑끝 골목

'새마을방앗간'을 운영했던 임희균 어르신은 방앗간 낡은 의자에 앉아 골목의 풍경이 됐다. / 김정미
'새마을방앗간'을 운영했던 임희균 어르신은 방앗간 낡은 의자에 앉아 골목의 풍경이 됐다. / 김정미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대전시 동구 삼성시장1길 16. 비를 막기 위해 덮어 놓은 잿빛 천막이 방앗간 간판을 삼켜버렸다.

고속철도가 지나는 경부선을 마주보고 쪽방촌에서 정동지하차도를 넘어가면 한 눈에 보기에도 낡은 건축물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쭉 늘어선 모양새가 마치 낡은 화물열차의 컨테이너를 닮았다. 쪽방촌 사람들은 이곳을 '판자촌'이라고 불렀다.

삼성시장길 16, 20-2, 22-1, 22-3, 24, 24-1, 26-1, 28-1, 32, 34 그리고 36. 쪽방촌에서조차 밀려난 사람들이 주거 벼랑끝에서 깃드는 골목이다. 노숙인들에 의해 굳게 잠가 놓은 자물쇠가 뜯겨도 낯설지 않은 곳. 사람들은 대전의 주거 빈곤 1번지로 '쪽방촌 옆 판자촌'을 꼽는다.

낡은 건축물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낡은 화물열차의 컨테이너를 닮았다. / 김정미
낡은 건축물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낡은 화물열차의 컨테이너를 닮았다. / 김정미

처음부터 살풍경은 아니었다. 골목이 시작되는 삼성시장1길 16에서 '새마을방앗간'을 운영했던 임희균(88) 어르신은 좋은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80년대엔 사람이 미어졌어. 동네도 꽉 찼고. 우리 할머니랑 나랑 장사해서 오남매 키웠는걸."

언제 방앗간을 접었는지는 기억에서 놓아버렸지만 번화했던 시장길의 훈훈했던 추억은 손에 쥔 담배꽁초처럼 차마 떨치지 못했다.

밤엔 아들네 집에서 생활하고 날이 밝으면 방앗간 낡은 의자에 앉아 골목의 풍경이 되기로 한 것도 미련 때문이다.

낡은 건축물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낡은 화물열차의 컨테이너를 닮았다. / 김정미
낡은 건축물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낡은 화물열차의 컨테이너를 닮았다. / 김정미

20여 가구가 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거주자는 10여명 정도. 월세 대신 연세 100만원을 내고 대동에서 이주했다는 박영열(71)씨는 노동할 힘이 있고 소일거리가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삼성시장1길 22-1. 거주지 바로 옆에 인력사무소가 있다.

"요즘은 겨울이라 일이 뜨문뜨문 해요. 얼른 벌어야 모아서 연세도 낼 텐데."

낡은 건축물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낡은 화물열차의 컨테이너를 닮았다. / 김정미
낡은 건축물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낡은 화물열차의 컨테이너를 닮았다. / 김정미

쪽방촌이 개발된다는 소식에 판자촌 주민들은 시름이 깊다. 안 그래도 도로용지에 실제 도로가 나기 때문이다. 조사원들은 공공주택 입주 대상이 될 거라고 안심시켰지만 도로점용료를 내는 사람에게 다시 세를 얻어 살고 있는 거주자들은 머릿속이 복잡하다.

삼성시장길에서 60년 세월을 보내며 새마을 방앗간을 운영했던 임희균 어르신의 주름진 손. / 김정미
삼성시장길에서 60년 세월을 보내며 새마을 방앗간을 운영했던 임희균 어르신의 주름진 손. / 김정미

오래 전, 갈 곳 없던 사람들이 나라 땅에 건물을 올렸다. 말하자면 불법건축물. 철거와 강제 이주 대신 주민들은 도로 점용료를 내며 삶을 버텼다.

삼성시장이 번화했을 때만 해도 살만한 동네였지만 사람들이 떠난 이후론 메마르고 스산한 풍경만 남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떠날 곳도 없는 사람들이 빈집을 채웠다. 누구에게 새집을 안겨 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분명한 건 현 거주자들이 도로 점용료의 4배를 넘나드는 월세와 연세를 요구받아도 도리 없이 지불해야 하는 '판자촌 비즈니스'의 대상, 힘없는 세입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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