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안익영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얼어붙은 지 수년째가 되면서 교류를 비롯해 양국간에 의미있는 행사나 활동도 찾아보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유학 중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의인(義人) 고 이수현씨의 추모 행사가 지난 1월 26일 도쿄와 부산에서 거행되었다.

이수현씨가 세상을 떠나신지도 언 20년이 되었고, 한일 관계도 경색되었지만 고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양국 국민들의 추모의 마음은 여전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한 고인의 배려심은 국경을 넘은 큰 인간애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2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고인의 삶을 기리고 있다.

배려란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기 위해 마음을 쓴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해 준다면 그 마음은 자신에게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뉴스들을 보면 배려가 실종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정이 넘치던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인정이 메마른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가 받을 고통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아이를 수없이 학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계모의 학대 사건, 타인의 안전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무분별한 음주운전 등을 보며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이 심각하게 결여된 것 같아 매우 유감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안익영 농협안성교육원 교수<br>
안익영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동물도 상대방을 배려한다.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물질을 주사한 야생쥐는 적극적으로 무리에서 이탈하기 위해 노력하고, 동족이 공격받는 것을 목격한 개미들은 적극적으로 이를 구조하기 위해 애쓴다고 한다.

타인을 구조하기 위해 본인을 내 던진 이수현씨 만큼은 아닐지라도, 동물보다는 나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는 바로 나 자신을 위한 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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