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류시호 시인·수필가

얼마 전, 지인들과 오랜만에 강화도 전등사(傳燈寺)를 갔다. 이 사찰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 창건된 사찰로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정족산성 안에 있는 전등사는 계절마다 색다른 느낌을 관광객들에게 선보인다.

남한에 단군과 관련된 유적이 두 곳 있는데 모두 강화도에 있다. 단군께서 나라의 안녕과 백성들의 평안함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참성단과 단군의 세 아들 부소, 부우, 부여가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三郞城)이다. 삼랑성의 원래 이름은 발이 세 개 달린 솥을 엎어놓은 모습의 정족산성(鼎足山城)이다. 그러나 단군의 아들과 관련된 삼랑성으로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전등사의 대표적인 건물 대웅보전은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전등사 대웅보전이 세상에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신성한 법당에 웬 벌거벗은 여인인가 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나부가 아니라 원숭이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전등사 뒤편, 산길을 따라 50여 미터를 올라가면 특별한 건물 하나를 만난다. 조선왕실의 중요한 서적들을 보관했던 정족산 사고(史庫)다. 사고는 몇 개의 건물로 구성되는데 먼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장사각, 그리고 왕실의 족보인 선원계보기략과 의궤(儀軌) 등 왕실 문서를 보관했던 선원보각, 마지막으로 사고를 지키던 군사들이 사용했던 취향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직에 근무할 때,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조선왕조실록의 최고 권위자 건국대 신병주 교수의 '조선왕조 실록과 기록문화'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신 교수는 실록 보관은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 4개였고, 임진왜란 때 화재로 인하여 전주본만 남았다. 임진왜란 이후 강화도 정족산, 묘향산, 오대산, 태백산, 무주 적상산에 보관했고, 왕실 문화의 칼라 화보집 의궤의 귀중함도 강조했다.

강화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구축한 요새이며,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보면 초지진 설치는 조선 효종 6년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1866년 10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 극동 함대와 조선과 무역을 강요하며 침략한 미국의 아세아 함대, 그리고 일본 군함 운요호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이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미국·일본의 함대는 우수한 근대식 무기를 가졌는데, 조선군은 빈약한 무기로 대항하여 싸웠기에 고전하였다. 이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그리고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최근에 한국관광공사는 비대면 관광지를 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누리집'을 통해 선보였다. 선정된 곳은 강화 전등사와 석모도 칠면초 군락지 외에 경기도 양평 서후리 숲, 경남 밀양 사자평 고원 습지, 제주 가파도 등 10곳이다. 전등사를 처음 갔던 때가 40대 초반이었는데, 세월이 화살과 같이 빠르게 흘러 같다. 전등사와 초지진 유적을 걷다 보면 옛날 기억을 생각나게 한다. 이렇게 강화도 문화여행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모두 힘들어할 때 힐링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